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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총리실 산하 한 회의실에서 가자전쟁 발발 1년을 맞아 특별 내각 회의가 열렸다. 사진 이스라엘 총리실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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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총리실 산하 한 회의실. 가자전쟁 발발 1년을 맞아 열린 특별 내각 회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입을 열었다. “(가자전쟁은) 존재의 전쟁, ‘부흥(Revival)의 전쟁’이다. 나는 이 전쟁을 공식적으로 그렇게 부르고 싶다.”
이스라엘 정부가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공격하기 시작하며 붙였던 전쟁명인 ‘철검’(Swords of Iron)을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반발을 샀다. 현지매체에 따르면 이의를 제기한 이들은 네타냐후와 같은 리쿠드당 소속인 아미차이 치클리 사회형평성 장관, 그리고 네타냐후가 자기 입지를 단단히 하기 위해 지난달 직무 없는 장관직까지 맡기며 연립정부에 합류시킨 우파 성향 기드온 사르 장관이었다. 이들은 “1948년 독립 전쟁의 히브리어 이름과 너무 유사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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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인정된 전쟁은 더 간단한 이름”
야당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는 더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엑스(X·옛 트위터)에 “이 정부는 부흥의 정부가 아니라 죄의 정부다. 이름은 바꿀 수 있지만 건국 이래 가장 끔찍한 재앙이 당신(네타냐후) 눈앞에서 이스라엘 국민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을 것”이란 글을 올렸다. 전쟁명을 바꾸는 게 ‘이스라엘 최악의 안보 실패’를 가리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다.
현지매체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지난해부터 전쟁명 변경을 시도해왔다. 공영방송 칸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창세기 전쟁’ ‘심하트 토라 전쟁’(유대교 경전인 토라 읽기가 끝나고 창세기 읽기가 시작된다는 의미) 등을 검토했다가 바꿨다.
이와 관련,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군사 작전에는 ‘성벽 수호자 작전’(2021년 5월), ‘보호 엣지 작전’(2014년) 같은 이름이 붙지만, 공식 인정된 전쟁엔 ‘6일 전쟁’(1967년), ‘욤 키푸르 전쟁’(1973년), 2차 레바논 전쟁(2006년)처럼 더 간단한 이름이 붙었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키부츠 림 근처에서 수백 명이 하마스에 살해되고 납치돼 가자지구로 끌려간 노바 음악 축제 현장을 방문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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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이란도 작전명에 의미 부여
이스라엘은 최근 중동 전선을 확대하며 여러 작전명을 공개해왔다. 레바논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하는 작전은 ‘새 질서’(New order), 헤즈볼라를 겨냥한 레바논 공습 작전은 ‘북쪽의 화살’(Northern Arrows)이었다. 지난 7월 ‘저항의 축’ 일원인 예멘의 후티 반군이 통제하는 항구도시 호데이다를 공습했을 때는 작전명을 ‘롱 암’(long arm)으로 지었다. 이스라엘에서 호데이다까지 거리가 1700㎞에 달하는 점을 감안했다.
반면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알아크사의 홍수’라고 명명했다. 알아크사는 1967년 3차 중동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3대 성지로, 이스라엘로부터 성지를 지키기 위한 작전이란 의미로 해석됐다.
김경진 기자 |
하마스는 지난 7일 “영웅적인 ‘알아크사의 홍수’ 전투가 1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이날 X에 “‘알아크사의 홍수’ 작전으로 시온주의자 정권이 70년 전으로 후퇴했다”고 썼다.
이란은 지난 4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드론·미사일 300여 발로 공격하며 작전명이 ‘진실한 약속’이라고 밝혔다. 지난 1일 이스라엘을 향해 약 200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작전도 ‘진실한 약속’이었다. 하메네이는 지난 6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항공우주군 사령관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에게 “이란의 이스라엘을 향한 두 차례의 미사일 공격 ‘진실한 약속’이 훌륭했다”며 훈장을 달아줬다.
6일(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항공우주군 사령관인 준장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왼쪽)에게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이 준장은 지난 4월과 이달 1일 이란의 이스라엘을 향한 두 차례의 미사일 공격이 "훌륭했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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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작전명 생성?
이처럼 전쟁·작전 이름은 정당성과 대중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튀르키예 기반 연구기관인 TRT세계연구센터의 라발 모히딘 연구원은 지난 5월 아랍매체 ‘더뉴아랍’에 기고한 글에서 “이스라엘의 명명 전략은 종교적 용어를 사용해 잠재적인 대중의 반대를 최소화하는 게 목표”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방공망 ‘다윗의 돌팔매’ 등 무기 이름도 성경 기반이라며 “치명적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고 미국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의 작명 절차에 주목한 이들도 있다. 이스라엘 연극평론가인 마이크 한델잘츠는 과거 일간 하레츠에 기고한 글에서 “이스라엘군에 물었더니 히브리어 작전명은 군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생성된다고 한다”며 “네타냐후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윈스턴 처칠로 여기니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유용한 제안을 내놓지 못하면 네타냐후 본인이나 다른 누군가가 작전명을 짓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국영통신사 아나돌루도 과거 이스라엘군 관계자를 인용해 “이스라엘 작전명은 먼저 히브리어로 선정된 후 공식 발표 전 아랍어와 영어로 번역된다. 선택 전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에 어떻게 호소력을 발휘할지 테스트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결국 작명과 역사 평가는 별개란 지적이다. 이스라엘의 미국 뉴욕주재 총영사 출신 칼럼니스트인 알론 핀카스는 7일 하레츠에 “네타냐후는 자신이 결코 책임지지 않은 전쟁의 이름을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전쟁의 이름에서 딸 것을 요청했는데 무모하고 대담하며 과대망상적”이라며 “역사는 네타냐후를 이슬람 파시즘에 대항하는 성전을 이끈 정의로운 십자군으로 판단하지 않을 거다.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이끈 무능한 정치인이자 대참사로 간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10일 초정통 유대인 남성들이 속죄일인 욤 키푸르(Yom Kippur)를 앞두고 상징적으로 죄를 버리는 타쉬리히(Tashlich) 의식을 아스돗에서 수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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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하마스에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 가족과 지지자들이 인질 석방과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인질 101명이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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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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