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노벨문학상]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전하는 ‘한강 노벨상’
“초등생 때 빈방서 ‘공상하면 안 돼요?’ 물어… 혹평하자면 요리도 못하고 소설밖에 몰라
딸의 문장은 아름답고 슬퍼, 끈질김이 장점”… 어머니도 “딸은 소설 쓰기위해 태어난 사람”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오른쪽)이 오빠의 졸업식에 참석해 찍은 사진. 한강의 어머니 임감오 씨(가운데)가 11일 전남 장흥 자택에서 동아일보에 제공했다. 왼쪽은 한강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 임감오 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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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 강아.”
어느 날 소설가 아버지는 한참 소설을 쓰다 문득 초등학교 4학년 딸을 찾아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녔다. 밖에 나와 있던 두 아들과 달리 딸은 자신의 방 어두컴컴한 구석에 홀로 있었다. 방으로 들어선 아버지를 보더니 딸은 “네”라고 말하며 일어섰다.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물었다. 딸은 조용히 답했다. “공상하고 있었어요. 공상하면 안 돼요?”
소설가 한승원 씨(86)는 11일 자신의 집필실인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 토굴 앞 정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40여 년 전 그때를 바로 어제처럼 기억했다. 전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 대작가의 반열에 들어선 딸이지만, 한 씨는 손때 묻은 옛 사진 속 어린아이를 보는 듯 한강을 자꾸 ‘아이’라 불렀다. 한 씨는 “혹평하자면 딸은 요리도 못하고 소설밖에 모른다”면서도 “영어는 어딜 가든 만점을 받았다”고 했다.
한강은 어릴 적부터 언어 능력이 두드러졌다. 중학교에 막 들어갔을 땐 영어책을 달달 외웠고, 오빠보다 영어를 잘했다. 고등학교 땐 한글날 글짓기에서 텔레비전을 ‘말틀’이라고 표현해 상을 받았다. 아버지가 소설 쓰기를 가르친 적도 없었지만, 대학에 진학할 땐 “소설을 쓰겠다”고 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아버지가 10세 때 준 타자기로 글을 쓴 문사(文士)다운 선언이었다.
고집도 남달랐다. 부모는 먹고살기에 조금이나마 나을 거라는 생각에 영문과에 가라고 권했지만, 한강은 단호히 거부했다. 자신이 정한 길을 걷기 위해 연세대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한강의 어머니 임감오 씨(84)는 11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딸은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에 대한 꿈을 꿨다”며 “딸은 소설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소설에 미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직후에도 한강은 한강다웠다. 아버지는 전화로 딸에게 “기자간담회를 하라”고 권했지만, 한강은 수상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민한 끝에 자신의 생각을 정했다고 한다. 한 씨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며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더라. 딸은 노벨상을 준 것은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더 냉철해지라는 의미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새 한국 안에서만 사는 작가가 아니라 세계적인 감각으로 (생각하는 작가로)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딸을 승어부(勝於父)라고 합니다. 나는 평균치를 약간 넘어선 사람인데요. 평균치를 뛰어넘은 아버지를 뛰어넘은 딸이죠.”
한 씨는 전날 밤 경황없던 때를 돌이키기도 했다. 한 씨는 “10일 밤 동아일보 여기자에게 처음 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는데 ‘가짜뉴스’ 아니냐고 되물었다. 딸이 너무 젊어 수상을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딸은 몇 년 뒤에야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수상 소식은 너무 갑작스러웠다”고 말했다.
1968년 등단한 선배 소설가로서 딸의 작품에 대한 상세한 평가도 전했다. 한 씨는 “딸은 문장이 아주 섬세하고 아름답고 슬프다”면서 “작가로서 딸의 장점은 끈질김”이라고 했다. 한 씨는 “소설 ‘소년이 온다’는 굉장히 시적이고 환상적인 그런 세계를 다루고 있다. 제주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는 첫 문장은 굉장히 으스스하고 신화적인 그런 분위기, 환상적인 리얼리즘 분위기로 끌고 간다”며 “트라우마와 열린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잘 그려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흥=이형주 peneye09@donga.com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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