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문학 깊이 확인한 낭보
이제 독자가 화답할 시간
작가의 고통이 잉태한 책
첫장 넘기는데 동참해야
문단이 더 풍요로워질것
이제 독자가 화답할 시간
작가의 고통이 잉태한 책
첫장 넘기는데 동참해야
문단이 더 풍요로워질것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인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2024 노벨문학상 특별 매대에 한강 작가의 책 전량이 모두 소진됐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이날 한강 책은 하루만에 30만부 이상 판매되고 정확한 판매부수 파악이 불가능해질 정도여서 서점가에는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김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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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가의 노벨문학상 기사를 밤늦게 송고하고, 11일 자정 넘어 퇴근해 가장 먼저 펼쳐본 책은 유디트 샬란스키의 2018년 저서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이었다. 한강 작가가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까지 읽은, 지금 탁자에 놓인 책”이라고 언급한 그 책이었다.
소멸과 기억에 관한 1980년생 독일 젊은 작가의 최근작인 이 책의 한 문장에 고요히 밑줄을 그었다. “쓰는 행위를 통해 아무것도 되찾을 수도 없다 해도, 모든 것을 경험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는 있다.”
삶은 상실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저자 샬란스키는 말한다. 한강이 아껴 읽은 이 책에 따르면 상실에 저항하는 강력한 대안은 ‘쓰고 읽는’ 행위다.
한강은 30년 전인 1994년 등단작 ‘붉은 닻’에서 소멸과 기억의 세계관을 예고했고, 역사성과 지역성으로 문학세계를 확장하며 유실되거나 망각된 인간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문학을 추구해 왔다. ‘쓰고 읽기, 읽고 쓰기.’ 그건 타자의 상처에 자신의 경험을 접촉하며 서로를 포옹하고 부축하는 일이다. 한강 문학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지금 밀란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도 달성하지 못한 놀라운 사건의 공동 목격자다. 이날 개점시간에 맞춰 교보문고 광화문점으로 ‘출근’해보니 정문 방향 매대에 100여명의 방문객이 한강 책을 사려고 오픈런 중이었다. 거대 카트에 실려온 수백 권의 한강 책은 플라스틱 노끈을 가위로 자름과 동시에 팔려나갔다. 그 시각, 언론사 카메라와 남녀노소 행인들이 운집한 ‘노벨상 매대’ 앞과 달리, 다른 책들 코너는 여백처럼 텅 비어 있었다. 저 대조적 풍경은 뭘 말해줄까.
결코 인정하기 싫더라도, 모두는 내심 ‘노벨문학상 컴플렉스’에 시달려 왔다. 일본은 차고 넘치고, 중국도 받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는가라는 억울한 질문. 첫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사이에 낙차(落次)가 없음을 증명하는 기념비적인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가 유럽과 미주를 우러러 보며 변방으로부터의 탈출을 희구하던 시간은 지났다. 이제 온 세계가 한국문학을 쳐다보는 상황이 됐다. 이제 우리가 중심이다.
그 사이,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국가대표 소설가’가 따낸 올림픽 금메달로 오독하는 건 아닐까. 이제 독자인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한국문학의 자산이 이미 충분함을 인지하고, 작가들이 고통 속에서 잉태한 책의 첫장을 홀로 펼치는 일 말이다. ‘쓰는 행위’의 결과물인 책을 읽으며 ‘읽는 행위’에 동참할 것, 낯선 작가의 책을 읽으며 그 안에 담긴 정신에 자아를 접속시킬 것.
왜 그런가. 책에 담긴 본질적인 동요와 불안은, 타자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매시간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공감이 세계를 구성한다. 그런 점에서 독서란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거울을 응시하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숭고한 작업이다.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독자이고(알베르토 망구엘), 독서는 ‘나’라는 껍질을 깨뜨린다(C. S. 루이스). 언어의 장벽에 가려졌을 뿐 한국문학의 정신이 좁거나 얕지 않았음을 모두가 깨달았다. 저 깨달음이 이번 노벨상 수상의 유산이어야 한다. 두 번째, 세 번째 노벨상의 실루엣은 그 때쯤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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