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애 디자이너 mnbg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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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0일) 저녁, 눈을 의심케 한 소식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노벨문학상에 한국 소설가 한강'. 짧은 속보 한 줄에 담긴 뜻은 엄청났는데요. 소설가 한강(54)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겁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이하 한국시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는데요. 이어 "한강은 자기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면서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부연했습니다.
한강은 한국인 최초, 또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됐습니다. 아시아 국가 국적의 작가가 수상한 건 이번이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인데요. 여성 작가로서는 역대 18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죠.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3억4000만 원)와 메달, 증서가 주어집니다.
출판업계는 국내 첫 노벨문학상 탄생을 계기로 국내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각종 대형 서점 사이트 접속량과 도서 주문량도 기대를 더하는데요. 젊은 세대 사이 인기를 끄는 '텍스트 힙' 문화에도 변주가 찾아올 것으로 보입니다.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책을 구매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한국인 소설가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 작가 가운데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강 작가가 처음이다. (조현호 기자 hyun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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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1990년 11월 전라남도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도 저명한 소설가 한승원입니다.
서울 풍문여자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한강은 소설로 이름을 알렸지만, 등단은 시로 했습니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을 발표해 등단했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죠.
'여수의 사랑'부터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 다양한 단편집, 장편 소설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 정중앙에 자리매김했습니다. 소설 외에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와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 '눈물상자' 등을 펴내는 등 시와 소설, 아동문학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했죠.
한강은 일찍이 한국 문단에선 '슈퍼스타'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았고,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과(구 문예창작과)에서 소설 창작론을 가르쳤죠. '한강 교수님' 때문에 1지망으로 서울예대를 희망하는 문창과 지망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서울예대 학생들은 한강에 대해 "섬세함과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사로잡는 교수"라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한강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 그에 따른 상처를 집요하게 바라봅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도 그 아픔에서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처절한 의지가 돋보이는데요. 대표작으로 꼽히는 '채식주의자'는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립니다. 이 소설집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세 작품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주인공 영혜는 폭력에 대항해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려 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 간다고 생각하죠. 결국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되는 영혜,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남편, 형부, 언니 등을 통해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나옵니다.
한강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채식주의자'를 통해서였습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상을 거머쥔 겁니다. 당시 부커상의 전신인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이 작품을 두고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에 관한 소설"이라고 평가했죠.
지난해에는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별하지 않는다'로 메디치상 외국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은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꼽힙니다.
그럼에도 이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예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영국 유명 온라인 베팅사이트 나이서오즈 등에서도 한강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죠. 유력 후보였던 '중국의 카프카' 찬쉐(71), 호주의 제럴드 머네인(85) 등보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데다가 여성이라는 점도 걸림돌로 분류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여성 작가는 17명에 불과했고, 아시아 여성 작가는 단 한 명도 없었죠.
한강의 작품을 잘 알고 있는 국내 출판업계 역시 수상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출판사 민음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는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는데요. 예상 수상 작가 이름에 한강이 없었을뿐더러 라이브에 참석한 편집자들은 해외문학팀 소속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강의 이름이 호명되자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는데요. 이내 확신의 환호를 내질렀죠. 라이브를 지켜보던 이들도 놀라움과 뭉클함이 담긴 댓글을 쏟아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외신도 한강의 수상에 깜짝 놀랐지만, '예상보다 빨랐을 뿐 자연스러운 결과'는 취지의 평을 내놨습니다. 가디언은 소설가 데버라 레비의 말을 빌려 한강을 "세계에서 가장 심오하고 숙련된 작가"라고 전했는데요. '채식주의자' 영어판 편집자 막스 포터는 한강에 대해 "비범한 인간성을 가졌다"며 "그의 작품은 모두에게 선물이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이미 노벨문학상 후보로 손색없다고 느꼈다"고 극찬했습니다. CNN,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은 일제히 한강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며 다양한 감상을 내놓고 있죠.
한강의 작품은 전날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부터 판매가 비약적으로 뛰었습니다. 불과 반나절이 지났을 때 교보문고에서만 6만 부, 예스24에서는 7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죠. 물량이 부족해 대부분 예약판매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안타깝지만 지금 주문해도 못 받는다는 말입니다.
(출처=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3'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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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수상과는 별개로, 한국의 독서 현실은 다소 침울합니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도 잘 알려져 있죠.
올 상반기,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0월 4일부터 11월 10일까지 만 19세 이상 성인 5000명과 초등학교 4학년생 이상 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연간 종합독서율을 조사(기준 2022년 9월 1일~2023년 8월 31일)한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은 직전 조사 대비 4.4%포인트(p) 증가한 95.8%를 기록했지만, 성인은 4.5%p 하락한 43.0%를 보였죠.
연간 종합독서율은 1년간 교과서나 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한 책을 한 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말합니다. 즉, 성인 10명 중 약 6명은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거죠.
독서량 기준으로 학생은 36.0권, 성인은 3.9권으로, 2년 전 대비 학생은 1.6권 증가했고 성인은 0.6권 감소했습니다.
특히 최근 10년간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2013년 72.2%였던 독서율은 2021년 47.5%로 절반이 날아갔죠. 반면 학생은 같은 기간 최소 92.1%에서~96.8%의 독서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심심할 때면(?) 제기되는 청소년의 문해력 논란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대목입니다. '이부자리'를 별자리 이름으로 착각한다거나, '족보'를 족발과 보쌈 세트로 알고 있다는 등 일부 사례가 전해지면서 문해력 문제가 젊은 세대 전반의 문제로 통하는 겁니다. 사실 젊은 세대의 어휘력 부족은 과거부터 문제로 거론됐습니다. 한자를 잘 모른다거나, 가족 호칭을 모른다는 문제 등이 제기돼 왔죠. 성인의 처참한 독서율을 봤을 때, 청소년의 어휘력 문제에만 혀를 차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까요.
6월 26~30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부스에 밈을 활용한 홍보용 스티커 붙어 있다. (출처=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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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중독 세대로 알려진 Z세대 사이 최근 색다른 바람이 불고 있기도 합니다. 도파민이 아닌 독파민(독서+도파민) 열풍인데요. 단순하고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가 아닌 책을 읽는 붐이 일고 있는 거죠.
이미 해외에서는 '서재 인증', 책 '리틀 라이프'를 읽은 후 반응을 담는 '눈물 챌린지'가 유행했습니다. 또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말이 아닌 표정과 행동으로 전하는 '침묵의 책 리뷰' 챌린지도 잇따랐는데요. 지난해 영국의 종이책 판매량은 6억6900만 권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수치도 독서 붐을 증명합니다.
이는 독서를 '힙'한 행위로 여기는 문화, 이른바 '텍스트 힙'에서 비롯됐습니다. 텍스트 힙은 '텍스트(text)'와 '멋지다'를 뜻하는 '힙(hip)'의 합성어인데요. 국내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배우가 직접 소개한 책이나 이들의 인스타그램 한 편에서 포착된 책을 따라 읽는 이들이 포착됩니다. 지인들과, 혹은 동네 모임을 만들어 함께 독서하거나 필사하는 등 경험을 나누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트렌드도 눈길을 끄는데요. 멋진 분위기의 북카페에서 책 한 권을 읽거나, 마음에 든 책을 구입해 인증 사진을 찍는 것도 이 같은 문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죠.
6월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현장을 찾은 방문객은 최소 15만 명입니다. 13만 명이 방문했던 지난해보다 15.4% 증가한 수치인데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의 70∼80%가 2030세대였고, 특히 1990년대 중반~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가 많았다는 겁니다.
지난 도서전에는 특히 출판업계 종사자들이 이 갈고(?) 준비한 부스가 다수 엿보였습니다. 단순히 책을 진열해 파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즉석에서 시를 짓거나 글귀를 공유하고, 독특한 굿즈를 선보이거나 작가와의 만남을 주최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죠. 이중에선 출판사 문학동네와 인스타그램으로 현대 시 관련 콘텐츠를 공개하는 포엠매거진의 협업으로 기획된 밈 스티커가 특히 인기를 끌었는데요. '문학동네 시인선도 선(善)이다', '외계인 침공 시 시 안 읽는 사람이 먼저 잡아 먹힌다' 등 인터넷 밈(meme)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울 문구들이 웃음을 자아냈죠.
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전자책 시장도 성장했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조사한 전자책 유통사업체의 매출액(웹소설 포함) 을 살펴보면 2020년 4619억 원에서 2022년 5601억 원으로 21.2% 성장했는데요. 전자책은 스마트폰, 태블릿 단말기 등을 통해 볼 수 있어 가볍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동 중이거나 짧은 시간 책을 읽고 싶을 때, 완독보다는 다양한 책을 읽고 싶은 '병렬 독서형' 독자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이에 전자책 단말기인 '이북 리더기'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죠. 이북 리더기는 '책 마니아' 느낌도 주면서 힙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유용(?)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온라인상에서는 각종 이북 리더기의 특징과 장단점을 분석해놓은 이용자들의 후기부터, 케이스나 파우치, 거치대, 리모컨 등 관련 액세서리 추천 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별다꾸'(별걸 다 꾸미는) 열풍에 발맞춰 스티커, 비즈 스트랩, 키링 등으로 이북 리더기를 꾸미기도 합니다.
텍스트 힙 트렌드는 단순 활자를 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감각적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다시 한번 변주가 찾아올 것으로 보이는데요. '힙'함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는 '소수만 향유하는 문화 여부'에 있는데, 노벨문학상으로 '일단 책을 사고 보자'는 이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책 구매 인증에 그치는 게 아니라, 완독과 개인 감상에 중점을 두는 유행이 불 수도 있다는 겁니다.
혹시 모르죠. 이 현상이 단순 유행을 넘어 출판계의 오랜 불황을 끝낼 결정적인 활기로 작용할 수도 있을지도요.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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