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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대학생 한강, 시 낭독할 때 신들린 느낌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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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신드롬 ◆

매일경제

"굿판의 무당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연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1992년 11월 23일 연세춘추에 실린 한강의 시 '편지'를 심사했던 정현종 시인에게 한강의 글은 '무당의 춤사위'와 같았다. 당시 연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이었던 한강의 시는 정 시인의 눈에는 '열정의 덩어리'이며 '풍부한 에너지'였다. 그에게 한강은 능란한 문장력으로 잠재력을 꽃피울 날을 기다리는 꽃망울이었다. 정 시인이 기대한 한강의 잠재력은 32년 뒤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이름으로 만개했다. 학생이자 시인, 소설가로 곁에서 지켜본 '멘토'이자 '동료'로서 정 시인은 한강에게 여전히 '무당 같은 기질'이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한강이 학부 2학년일 때 각자 써온 작품을 읽고 낭독하면서 서로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어떤 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강의 시를 읽고는 신들린 느낌을 받았다는 기억은 선명합니다."

11일 정 시인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학생 시절 한강이 쓴 시를 평가하면서 느꼈던 경외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정 시인은 "원래 한강이 조용한 성격이라 그런 평가를 듣고도 차분했다"며 "지금은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그의 시작은 시였고 시에서도 특출났다는 점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정 시인의 시 창작 강의는 50여 명의 학생이 수강했는데, 한강의 시는 단연 우수작으로 뽑혔다. 한강 작가는 대학 시절 학생들 사이에서 '글 잘 쓰는 선배'로 이름을 날리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많은 국문학도 동기·후배들에게 작가의 꿈을 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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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4세 때 전남 목포문학관 뜰의 문학평론가 김현의 기념비를 찾은 한승원·한강 부녀, 고(故) 김형영 시인(왼쪽부터). 당시 한강은 '샘터'에서 근무 중이었고, 김 시인은 '샘터' 편집자였다. 연합뉴스·한승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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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시인이 심사한 연세문학상을 수상한 후 한강 작가는 "앓아누운 밤과 밤들의 사이, 그토록 눈부시던 빛과 하늘을 기억한다. 그들이 낱낱이 발설해온 오래된 희망의 비밀들을 이제야 엉거주춤한 허리로 주워 담는 것이다. 목덜미가 아프도록 뒤돌아보며. 뽑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기쁨, 내 모든 눈물겨운 이들의 것"이라는 소감으로 화답했다.

두 사람은 졸업 이후에도 안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작품에 대해 논의한다고 했다. 정 시인은 한강의 작품 중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가장 잘 읽은 작품으로 꼽았다. 정 시인은 "나는 소설은 잘 모르지만 한강이 보내주는 책은 다 읽는다"며 "문장이 매우 개성적이고 형식이 독특했던 두 책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한강과 같은 학번으로 연세대를 다녔던 조강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졸업 후 평론가로 한강과 마주하며 30년이 넘는 인연을 이어왔다. 조 교수는 "한강이 등단하고 첫 장편소설을 썼을 때 평론가들이 '젊은 마에스트로의 탄생'이라고 칭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한강의 탁월함이 예전부터 눈에 띄었다고 했다. 한강의 글에 대해선 "한강 작가는 찬찬하게 삶을 꿰뚫어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며 "신인들이 보여주는 경쾌함과 가능성을 넘어 처음부터 자기의 문장으로 자신의 세계를 잘 보여주곤 했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한강은 고유의 집중력으로 질문을 끝까지 집요하게 밀고 가는 작가"라며 "문학을 통해 우리 시대와 사회의 증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는 데 능하고, 그것을 시적인 문장으로 잘 써나가는 작가"라고 강조했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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