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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물가와의 싸움' 3년만에 끝…추가 금리인하 신중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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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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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3년2개월 만에 통화 긴축 기조의 막을 내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3.50%에서 3.25%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날 결정은 이창용 한은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원 7명 중 6명의 찬성으로 이뤄졌다. 안정된 물가 수준, 회복세가 더딘 내수 상황 등을 고려한 조치다. 다만 집값‧가계부채 급등세 불씨가 아직 남아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향후 인하 속도는 더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택할 수 있었던 건, 물가상승률 목표치(전년 동월 대비 2%)를 초과 달성한 영향이 크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6% 올라, 3년 6개월 만에 1%대를 나타냈다. 2022년 7월 6.3%를 나타내며 고점을 찍었던 물가상승률이 안정궤도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0.50→0.75%)하면서 시작된 ‘물가와의 싸움’이 3년여 만에 마무리된 것이다.

이날 이 총재는 “주요국보다 작은 폭의 금리 인상으로 보다 빠르게 물가안정을 달성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일”이라고 자평했다. “(긴축 과정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나 외환시장 변동성도 큰 문제 없이 관리됐다”며 그간 한은의 인상 폭도 적절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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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물가와의 싸움’은 마무리됐지만, 향후 인하 속도와 폭에 대해서는 복잡한 셈법이 남아 있다. 내수 부진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집값‧가계부채 급등세를 다시 자극하지 않는 것이 과제다. 이 총재가 “내수와 수출 그리고 금융안정 사이의 상충관계는 과거 정책 기조 전환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고민스러운 정책 여건”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우선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내수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선 점진적인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 내수의 핵심 부문인 민간소비는 회복세가 더딘 양상이고, 건설투자 부진도 두드러진다. 공사 실적을 금액으로 환산한 건설기성(불변)은 지난 8월 1년 전보다 9% 줄어 전월(-5.2%)보다 감소 폭이 확대됐다. 반도체 등 수출 호조가 체감 경기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다. 이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 정부와 여당은 내수 회복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온 바 있다.

일각에선 인하 시점이 늦었다는 ‘실기론’도 제기됐지만, 한은은 적극 반박하며 선을 그었다. 지난 8월에는 금리를 동결해 집값‧가계부채 급등세로 인한 금융 안정 위험을 잡는 것이 시급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 총재는 “8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았는데도 가계대출이 10조원 가까이 늘었다”며 “(8월 결정이 옳았는지는) 1년 정도 시간이 더 지나서 경기 상황과 금융안정 달성 여부를 보고 평가해달라”고 말했다.

이날도 금통위는 집값‧가계부채 급등세에 대한 여전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9월 들어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기준금리 인하를 뒷받침하긴 했지만, 일시적인 둔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이날 장용성 위원이 동결 소수의견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은 5조7000억원 늘어, 증가액이 8월(9조2000억원)보다 크게 축소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첫째 주(7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10%로, 9월 둘째 주(0.23%) 이후 상승 폭이 축소되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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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정부가 거시건전성 정책을 강화하고 공급정책을 내놓으면서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졌다”면서도 “기준금리 인하가 주택 거래량이나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가계부채 급등세 둔화 여부가 향후 인하 속도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된 것이다. 그는 이날 금리인하 결정에 대해서도 “금융안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면에서 매파적 금리 인하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가 집값을 높이고 가계부채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정책 공조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경기와 금융안정 등을 면밀히 지켜봐야 하는 만큼, 금통위 내부에선 추가 인하에 대한 신중한 기류가 감지된다. 이날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3개월 후에도 기준금리를 3.25%에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0.25%포인트 인하가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등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미 대선 결과나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금통위원 1명은 내수 하방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시장에선 연내 남은 11월 금통위 회의에서는 기준금리가 동결되고, 내년 1분기 추가 인하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11월 이후 가계부채 증가세가 추가로 둔화하고, 물가상승률이 2% 내외 흐름을 보이면서 내년 1분기 중 추가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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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FED)]


외환시장 변동성을 고려하면 향후 한은의 인하 폭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빅 컷(한 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하)’로 인해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1.75%포인트 벌어져 있는 상태다. 기준금리를 5.25~5.50%까지 올렸던 미국은 한국보다 인하 여력이 더 큰 만큼, 한은이 금리 차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인하 속도를 더 느리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역전 상태가 자본 유출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Fed가 중장기적으로 기준금리 수준을 2.9% 정도로 보고 있는 만큼, 한은은 이를 상회하는 수준까지의 인하 여력을 가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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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오효정·곽재민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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