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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사설] 한강 노벨상 수상작이 유해도서로 찍혀 폐기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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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쾌거를 이룬 한강의 작품이 유해 도서로 분류돼 일선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도대체 유해 여부를 누가 판단한 것인가. 학생들이 노벨상 수상작을 읽지 않으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인가. 문제가 불거지자 경기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의 자율 결정이라고 발을 빼고 있다. 그러나 한강이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감시대상 명단)에 오른 사실을 상기하면, 한강 작품에 대한 권력의 핍박·차단을 단순 우발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다.

11일 강민정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학교도서관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을 보면, 경기지역 초·중·고교에서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1년간 2528권이 폐기됐고 여기엔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포함됐다. 보수 성향 단체들이 ‘동성애 조장’ 등을 이유로 폐기를 요구하자 경기도교육청이 관련 내용을 공문으로 일선 학교에 하달한 것이 원인이다. 교육청은 유해성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고 보수단체들이 연 기자회견 기사를 참고하라고 첨부해 보냈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도교육청은 “도서 폐기와 구입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 교육청이 관여할 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보수단체의 일방적 주장을 여과 없이 일선 학교에 내려보낸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다. 이들 단체는 학생인권조례가 성적 일탈을 조장한다며 폐지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한강의 작품이 유해 도서로 분류·폐기된 과정을 조사해 관련자를 문책하고, 작가와 도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한강은 박근혜 정권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핍박을 받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는 정부의 우수도서 선정·보급 사업 심사에서 배제됐다. 사상적으로 편향됐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전 세계가 인정하는 인류 보편적 문학상 수상으로 실제 사상이 편향된 자는 블랙리스트 작성 세력이라는 것이 증명됐다. 정치적 성향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등으로 문화와 예술에 주홍글씨 낙인을 찍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블랙리스트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감시와 검열의 고통 속에서도 펜을 굽히지 않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일깨운 한강에게 경의를 표한다.

경향신문

소설가 한강이 2024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6년 소설 ‘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한강.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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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강 작가의 대표작 <채식주의자>와 관련한 주요 키워드를 모아 놓은 인포그래픽. 도서관 정보나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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