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말레이시아 외무장관 공개적으로 반대
중국과 갈등 잦은 필리핀에서도 회의적 기류
[비엔티안=AP/뉴시스]10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제27회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일본 정상회의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참석자들이 손을 잡고 있다. 2024.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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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주창하는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둘러싸고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11일 보도했다.
이시바 총리가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호소한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동지국(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이 집단적 자위권에 근거해 서로 방위하는 구조다. 아시아에서 자유나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나라와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에 대한 억제력을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
이시바 총리는 9일 라오스에서 열리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 차 출국하기 전에 아시아판 나토 구상에 관해 "자민당 내에서 논의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며 "이번 회의에서 제기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지론은 일단 제쳐두고 회의 참가국과의 관계 구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아세안은 1967년에 출범한 후, 지역의 경제적 유대를 강화해왔다. 회원국 이외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도 특징으로, 매년 가을에 열리는 정상회의에서는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을 초청하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는 인도와 호주, 러시아도 포함한다.
닛케이는 "아세안은 미국·유럽이나 중국·러시아 등 어느 진영에 속하지 않는 '중심성'이나 회원국의 '일체성'을 외교의 기둥으로 삼는다"며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아세안이 내세우는 이념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세안 회원국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온도차가 있어, 이시바 총리의 구상에 동의하면 지역 분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말레이시아의 모하마드 빈 하산 외무장관은 정상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미 아세안이다. 아세안에 나토는 필요없다"고 부정했다.
동아시아정상회의의 참가국이자 미국·일본·호주의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 참여하고 있는 인도도 아시아판 나토 구상을 지지하지 않을 생각을 나타냈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은 "우리는 어떤 나라와도 (안보) 조약을 맺고 있지 않다. 전략적 틀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닛케이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동서 냉전 하의 1954년,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태국, 필리핀 등 8개국에서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가 결성됐고, 베트남전 대응을 놓고 의견이 갈리는 등 기능 부전에 빠져 1977년 해산한 바 있다"며 "최근에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이 위압적인 행동을 강화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격해지고 있어, 아세안 회원국이나 글로벌사우스로 불리는 신흥국에는 미중 대립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안보정책에 밝은 아시아 전문가들도 회의적이라고 닛케이가 전했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원(RSIS)의 벤저민 호 연구원은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이 늘어나는 것 자체는 환영하지만 지지를 분명히 하는 지도자는 없을 것"이라며 아시아판 나토 실현에는 "미국의 찬성이 필요하게 된다"고 말했다.
남중국해에서 해상 충돌이 빈발해, 중국의 위협을 가깝게 느끼는 필리핀에서도 이시바 총리의 구상에 실현성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필리핀 싱크탱크 아마도르리서치서비스의 훌리오 아마도르 대표는 "이유도 없이 아시아판 나토를 결성할 수는 없고, 누가 위협인가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닛케이에 말했다.
아시아판 나토에 대해서는 동남아 지역 언론도 반응이 싸늘하다.
인도네시아 일간 자카르타포스트는 5일자 사설에서 "아시아의 나토라는 아이디어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모든 가용한 병력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는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에는 매우 불쾌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라며 "아세안은 일본을 신뢰할 수 있는 무역 및 경제 파트너로 필요로 하며, 지역의 긴장을 악화시킬 뿐인 군사 동맹국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아세안이 중국과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 강국으로 평가되고, 미국, 중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경제를 가진 지역이란 점을 거론하면서 "아세안은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은 현재 아세안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수익성이 좋은 제안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p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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