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이자 부담에 소비·투심 냉각
물가안정·美금리인하도 결정 영향
가계빚 부담에 “추가인하 없을 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통화당국이 38개월만에 통화정책 전환(피벗)을 전격 단행한 배경엔 ‘내수부진’이 있다. 장기간 지속된 고금리가 민간 소비와 투자 여력을 갉아먹고 있단 판단이다. 적기에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자칫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집값 급등과 가계부채 확대의 공포를 이겼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1%대까지 내려왔고,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작했단 점도 이번 결정의 근거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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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내수 회복 막고 있다=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3.50%인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인하한 주요 근거 중 하나로는 2분기 역성장이 꼽힌다.
지난 2분기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보다 0.2% 감소했다. 분기 기준 역(-)성장은 2022년 4분기(-0.5%) 이후 1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내수가 부진했다. 민간소비가 0.2% 감소했고,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도 각각 1.2%, 1.7% 축소됐다.
최근에도 내수 부진 우려는 계속 지적됐다. 국책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넉 달째 경기 개선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내수 회복 지연을 꼽았다.
KDI는 금통위 하루 전날 발표한 ‘10월 경제동향’에서 “건설투자를 중심으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되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KDI는 7월부터 내수가 회복되지 못해 경기 개선세를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꾸준하게 지적했다. 우려를 나타내는 표현도 ‘둔화’, ‘회복 지체’ 등 비교적 강한 어휘를 사용했다.
‘내수 회복 지연’의 요인으론 고금리를 지적했다. KDI는 “서비스 소비 증가세에도 고금리 기조로 소매 판매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금리 인하를 압박한 셈이다. 실제 8월 소매판매는 1.3% 감소해 전월(-2.2%)에 이어 감소세가 이어졌다.
KDI가 국책연구기관인 점을 감안하면 경기 진단 등에 정부 측 의중이 실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관훈토론회에서 “(한은 총재 입장에서도) 금리 결정을 할 때 외부 요인에 대한 제약이 없어졌고 국내 상황을 봐야 한다고 했기에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KDI는 지난 8월에도 고금리에 따른 내수 부진을 이유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5%로 낮추고, ‘8월 인하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5월 전망 때 이미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고 8월에 금통위가 있어 그때도 충분히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에 올해 상반기 실질 소비수준 감소폭이 2003년 이후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소매 판매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올해 상반기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 기준) 증가율은 작년 동기 대비 2.4% 감소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른바 ‘카드 대란’으로 내수 소비가 크게 꺾였던 2003년(-2.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물가 안정에 미국 금리 인하까지...피벗 못 미뤄=내수가 살아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제1목표인 물가가 안정됐다는 점도 금리 인하의 근거가 됐다.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 지수는 114.65 (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1.6% 상승하는데 그쳤다. 2021년 2월(1.4%) 이후 3년 6개월 만에 최저치로 한은 물가 안정 목표치인 2.0%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올해 4월 2.9%를 기록하며 2%대로 진입한 물가 상승률은 8월 2.0%까지 낮아졌다가 9월 1%대로 떨어졌다. 석유류 물가가 작년 동월보다 7.6% 내리면서 전체 물가 상승률을 끌어내렸다.
미국이 먼저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환율 측면의 부담도 덜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했다. 이에 한미 금리차는 역대 최대였던 2.0%포인트에서 벗어났다.
통상 금리는 위험에 비례해 산정된다. 그래서 미국 금리가 우리나라보다 낮은 걸 보통 정상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상태가 역대 최장 기간 지속됐다. 통화당국 입장에선 그동안 금리를 내릴 공간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미국이 금리를 전격 인하하면서 우리나라가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환율이 크게 오르거나,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이 비교적 낮아졌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물가가 많이 내려온 상황에서 내수경기가 안 좋다는 얘기가 많다”며 “인플레이션이 안정되면 실질금리가 높아지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마침 미국도 금리를 내린 지금 시점에서 조정을 주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집값과 가계부채 문제는 마지막까지 금리 인하를 망설이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앞으로 있을 결정에서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에 연내 추가 인하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린 일이 없기 때문에 올해 한번 내리면 최대한 내린 것이고 추가적인 인하는 없을 것”이라며 “내년에도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한번이나 두번 정도만 내리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태화 기자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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