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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단독]어그러진 북한 경수로…정부, 지급한 이자만 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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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개발로 중단된 '대북 경수로' 사업

원리금 돌려막은 정부…이자가 원금 초과

연평균 742억, 이대로면 계속 혈세로 충당

북한의 핵 개발로 대북 경수로 사업이 중단된 이래 이자 지급에만 2조원에 가까운 정부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원금 1조3744억원을 뛰어넘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 북한의 채무불이행이 근본적인 문제지만, 정부도 세금으로 이자만 막는 것 외엔 이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면 앞으로도 해마다 수백억 원의 혈세로 채무를 감당해야 한다.

11일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경수로 사업 이자 상환에 지출한 예산은 지난달 말 기준 1조8847억원이다. 당초 공공자금관리기금(공공사업 등에 활용하기 위해 여유 자금으로 만든 기금)으로 원리금을 충당해오다가, 2012년부턴 정부 출연금(일반회계 전입금)으로 이자만 상환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12년간 연평균 742억원 상당의 세금이 투입됐다.

'핵 개발' 북한에 뒤통수 맞은 대북 경수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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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북한 대신 채무를 떠안은 전말은 이렇다. 북한과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다.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함경남도 신포 지역에 1000㎿급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만들었다. 한·미·일 3국이 참여했다. 예상 공사비는 46억달러로 책정됐고, 70%에 해당하는 32억2000달러(3조5420억원)를 한국이 부담하기로 했다. 실제 집행된 금액은 11억4600달러, 우리 돈 1조3744억원(원금)이다.

자금은 3단계에 걸쳐 집행됐다. 정부가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남북협력기금' 내 경수로 계정으로 자금을 예탁하면, 'KEDO' 측이 이를 무이자로 대출받아 북한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경수로가 완공되면 북한은 소유권을 갖고, 투자금을 20년에 걸쳐 분할 상환하기로 했었다. 자금이 투입된 역순으로 돌려받는 구조다. 2001년 본공사에 착공했지만, 이듬해 10월 미국에서 발표된 보고서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사실상 미국을 주체로 하던 KEDO 집행이사회는 대북 중유 공급을 중단했고, 북한은 반발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직원 등을 추방했다. 피해 보상까지 요구했다. 혼란을 거듭하던 사업은 2006년 5월 공정률 34.5% 상태에서 종료됐고, 북한은 그해 10월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원리금 돌려막은 정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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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집행된 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것보다 큰 문제는 계속 불어나는 이자다. 정부는 당초 채권 발행을 통한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원금과 이자를 함께 차입했다. 쉽게 말해 이자를 갚으려 다시 돈을 빌린 것이다. 원리금에 다시 이자가 붙는 악순환으로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런 문제로 2012년부턴 국채 대신 정부 출연금으로 이자만 내고 있다. 여기서 정부 출연금은 일반회계 전입금이다. '세금'으로 거둬들인 예산 회계에서 지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회계로 이자를 돌려막는 방식은 맹점이 있다. 넓게 보면 정부의 '주머니' 안에서 돈을 빌려주고 갚는 식으로 도는 것이니, 당장 회계상으로는 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대신 떠안은 원리금은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으며, 이는 그만큼의 세금이 국정에 투입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불어난 금액을 미래 시점에 어떻게 청산할지도 불분명하다. 이렇게 누적된 차환액은 이미 9조원을 넘겼다. 원금 7조6533억원에 이자만 1조8847억원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이 문제로 여야가 충돌한 바 있다. 본지가 확보한 회의록에 따르면, 2017년 11월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일반회계로 이자를 차입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일반회계로 이자를 해결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을뿐더러, 채무를 청산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도 없이 세금으로 돌려막기를 계속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일반회계 지출을 고집했다.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이 같은 방침을 옹호했고, 설전 끝에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하고 묻혔다.

채무 청산 요구도 못 하는데, 원전까지 지어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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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촬영된 위성사진. 함경남도 신포 지역에 경수로 건설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미지출처=구글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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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북한에 직접 돈을 갚으라는 말도 못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채무 청산 요구는 KEDO가 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사업을 추진한 주체는 정부가 아닌 KEDO이기 때문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KEDO 측은 경수로 사업이 종료된 뒤 대북 청구권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하반기 북측에 '손해배상 청구 공한'을 발송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앞으로 온 공한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2011년 '부당한 처사'라고 한 차례 회신한 게 전부다.

북한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버티는 한, 남북협력기금을 거쳐 집행한 KEDO 대출금(1조3744억원·원금)도 현재로선 상환이 어렵다. 한국과 KEDO 간 대출금 처리방안 협의가 종료될 때까지 채무를 유예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기 때문이란 게 정부의 입장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공공자금관리기금 원금 상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재정 당국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상환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수로 사업은 문재인 정부 시절 불거진 '대북 원전 추진 의혹'과도 연결돼 있다. 검찰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을 수사할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은폐하려 한 문건에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보고서와 '경수로 백서' 'KEDO 관련 업무 경험자 명단' 등이 포함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에 청산을 요구할 방법을 찾는 게 최선인데, 대화에 치중하던 시기에도 채무는 덮어두고 원전을 지어주는 오판을 거듭할 뻔했다"고 지적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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