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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조효정 기자]
유통업계 오너가 자제들이 햄버거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드는 가운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현대그린푸드도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모두 미국 유명 햄버거 브랜드와 협업을 맺고 직접 사업에 나서면서 재벌가의 자존심 대결이 된 모양새다. 업계에서 공격적인 투자 단행으로 대대적인 매장을 오픈하는 것과 다르게 정 회장은 본인만의 안전한 시장 안착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종합식품기업 현대그린푸드는 미국 캐주얼 버거 브랜드 '재거스(Jaggers)'의 국내 1호점을 지난달 30일 경기 평택시 미군기지(USAG 험프리스)에 열었다.
재거스의 입지 선정 전략은 색다르다. 관행적으로 유통 대기업들은 글로벌 외식 브랜드의 데뷔식을 유동 인구가 많고 광고 홍보 효과가 큰 서울 강남이나 홍대 성수 등에서 치른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3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도입을 주도한 '파이브가이즈' 1호점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희수 부사장 주도로 2016년 국내에 들어온 '쉐이크쉑(쉑쉑버거)' 1호점은 강남 중심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은 철수한 '정용진 버거'로 불리었던 신세계푸드 '자니로켓'도 신세계 강남점에 1호점을 오픈한 바 있다.
업계는 재거스 입지 선정에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미군기지에서 선제적으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한 후,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의중이라는 해석이다.
재거스 1호점은 미군기지에 위치한 만큼 부대 주둔 인원 또는 허가를 받은 방문자만 이용할 수 있다. 사실상 일반 소비자는 재거스 버거를 이용할 수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현대그린푸드가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를 첫 매장으로 점찍은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테스트베드(Test Bed, 시험대) 운영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앞서 2020년 현대그린푸드와 국내 독점 운영 계약을 맺은 텍사스 로드하우스도 같은 맥락에서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에 첫 매장을 오픈한 바 있다. 이후 현대백화점, 현대프리미엄아웃렛을 중심으로 전국 매장을 8개까지 늘리며 텍사스 로드하우스를 국내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재거스 역시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에서 반응을 살피고, 일반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다른 지역까지 매장을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정지선 회장은 보수적 경영 기조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상 사업 확장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그룹이나 기업인을 놓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경영 기조라고 한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이에 더해 '돌다리를 아예 두드리지도 않는다'라는 말도 듣는다. 인수합병 및 투자에는 비교적 소극적이지만 신중하게 검토한 투자 건에는 대체로 좋은 성적을 내왔다.
경쟁 유통기업들이 이커머스사업 확대에 사활을 걸 때 현대백화점 홀로 기업복지몰업계 1위인 이지웰을 인수해 안정적 현금창출원(캐시카우)으로 만들었다.
면세시장에도 뒤늦게 진출했지만 조급함을 나타내기보다는 안정적 흑자기조를 만든 뒤에야 사업 확대를 공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룹 내 제조 및 플랫폼 사업 영역과 시너지가 예상되는 뷰티·헬스케어·바이오·친환경·고령 친화 등 분야로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에도 안정적인 성과를 지향해왔다.
특히 요식업 사업에 집중할 때는 이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최근 몇 년 새 유통업계 오너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와인 사업에서도 볼 수 있다. 2022년 신세계는 미국 나파벨리의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를 인수, 인근의 와일드푸트 빈야드를 약 460억원에 구매했다. 동기간 현대백화점그룹은 와인 수입 유통사 비노에이치를 5억원 규모로 설립했다.
또 롯데가 롯데마트 잠실에 400평 규모의, 롯데마트맥스 창원중앙점에 300평 규모의 보틀벙커를 개장할 때 현대백화점 그룹은 와인 전문 매장 와인웍스를 현대백화점 지점 5곳 정도에 작은 규모로 입점했다.
업계에서는 쉐이크쉑이나 파이브가이즈 경우와 달리 정지선 회장이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기가 지난 것도 이러한 기조에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몽근 명예회장이 건강을 이유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정지선 회장은 2007년 35세의 나이에 회장직에 올라섰다. 경영일선에 오른 지 20년이 다 돼가는 사이 정 회장은 회사 내 안정적인 입지를 충분히 다니고 경영성과를 보여준 만큼 무리한 투자가 불필요하다는 해석이다.
다만 이번 계약은 그룹의 업종 포트폴리오를 넓히기 위한 시도로는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도 신사업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정 회장은 "기존 사업의 성장과 신규 사업 진출 측면에서 다양한 협력을 시도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비전 2030' 성장전략을 구현해 나가자"고 강조하며 사업다각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재거스 1호점 위치 결정에 정지선 회장의 의견이 들어갔는지 여부와 관련해 공식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 텍사스 로드하우스가 평택 미군기지에서 시작해 국내 안착에 성공한 사례를 따라간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조효정 기자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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