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계약직 출신에서 지주회장까지 올라
IMF 권고사직 후 자기계발에 매진
"'6대 금융지주' 걸맞는 그룹으로 성장 목표"
그는 “IMF 당시 해고됐을 때 많은 것을 느꼈는데 특히 자기 능력을 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며 “직원 하나하나의 역량이 은행의 역량이고 좋은 인력은 우리의 경쟁력이기에 직원들이 자기계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iM뱅크 본점에서 가까운 대구 수성못을 1시간가량 걸으며 그의 삶과 시중은행 금융그룹으로서의 DGB금융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7일 대구 수성못에서 본지와 인터뷰한 황병우 DGB금융지주 회장이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DGB금융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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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에서 휴식공간으로 거듭난 수성못…“iM뱅크도 변화 통해 사랑받을 것”
지난 7일 오전 갈대와 나무가 우거진 대구 수성못은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이 종종 보였다. 수성못 주위로 카페와 음식점들이 많았다. ‘수성못’이라고 쓰여진 비석 앞에서 황병우 회장은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2개월간 오찬과 만찬 약속이 많아 꼭 필요한 경우 불가피하게 조찬 모임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성 호텔 식당에서 주로 모임을 가지는 데 수성못의 좋은 경치를 보고 있으면 갈등을 겪던 사이일지라도 해소가 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수성못이 변화를 통해 시민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20년대 만들어진 수성못은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못 주변은 주로 부추 농사를 짓던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매립될 처지에 놓였었다. 농업용지가 없어지자 다른 저수지들은 빠른 속도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성못은 시민 휴식공간으로 변화를 모색하면서 대구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곳으로 거듭났다.
그는 수성못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iM뱅크도 비슷한 상황에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면서 전국에서 영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황 회장을 만난 이날은 iM뱅크 창립 57주년 기념일이었다. 1967년 10월 7일 한국 최초의 지방은행으로 만들어진 iM뱅크는 지역 소상공인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방은행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해당 지역의 자본을 모아 지역사회 발전을 유도하고 지역 간 경제력 격차를 줄이겠다는 목적이다. 그해 1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지역적 자본을 집대성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내자동원(국내 자본 동원)을 위해서는 지방은행의 설치를 검토하고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일 대구 수성못에서 본지와 인터뷰한 황병우 DGB금융지주 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DGB금융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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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대구지역 상인들이었다. 6일 후인 23일 대구상공회의소 회원과 대기업 대표 등 43명이 모여 가칭 ‘대구은행설립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발기인회의와 창립총회를 통해 주식공모에 나섰지만, 주식청약 부진과 주금납입 저조 등으로 인가 신청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재무부 장관의 대구 방문을 계기로 시중은행과의 경쟁을 극복하고 초창기 예상되는 경영상의 애로사항을 줄이기 위한 대정부 건의를 통해 무사히 인가 변경신청서가 통과됐다. iM뱅크는 10월 7일 김준성 초대 은행장을 비롯해 43명의 임직원 등이 참석한 개업식이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열고 영업을 개시했다. 이후 대구·경북 지역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지방은행으로 영업을 거듭하다 지난해 정부가 은행산업 경쟁 촉진을 위해 지방은행 시중은행 전환을 추진하면서 iM뱅크가 그 대상이 됐다.
황 회장은 “지역 내 성장을 이끌었던 지방은행에서 전국의 자금을 환류시키며 지역 발전도 이끄는 시중은행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수성못처럼 변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사랑받은 것처럼 iM뱅크도 새롭게 변화해 고객들에게 사랑받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끝없는 자기계발과 긍정적 사고로 극복한 권고사직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iM뱅크처럼 황 회장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살아왔다. 계약직 인턴에서 금융지주 회장까지 오른 만큼 후배 직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자기계발과 긍정적인 사고다.
1967년생인 황 회장은 7대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BNK·DGB·JB) 회장 중 가장 최연소다. 1995년 대구은행에 입행 후 지금까지 ‘DGB 금융맨’으로 활약 중이다. 2012년 대구은행 경영컨설팅센터장 이후 영업점장, 은행장 비서실장, DGB금융지주 전무 등을 거쳤다. 그룹 최고경영자(CEO)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대구은행장에 올랐다. 2년간 16개 세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이 검증 과정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황 회장은 지주 회장에 오르기까지의 자신의 삶에 대해 “은행원으로서 참 굴곡진 삶을 살았다”고 표현했다. 그 삶을 보여주는 게 자신의 행번이라고 했다. 그는 은행에 입사하면 주어지는 번호인 행번이 10개가 있다고 했다. 1995년 입사 당시 행번을 비롯해 정규직 전환 후 받은 행번, 해고 후 돌아왔을 때 받은 계약직 행번, 또 한 번의 정규직 전환 후 행번과 책임자·임원을 거치며 받은 행번을 포함한 숫자다.
지난 7일 대구 수성못에서 본지와 인터뷰한 황병우 DGB금융지주 회장이 수성못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DGB금융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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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다양한 행번을 가지게 된 이유는 황 회장이 해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입사 당시 그는 계약직이었다. 대구은행 사상 최초로 인턴직을 채용했는데 여기에 뽑혔다. 은행 산하 금융경제연구소에서 3년 동안 묵묵히 일하며 정규직 전환까지 이르게 됐다. 그러다 찾아온 위기가 있었는데 바로 1997년 외환위기다. 대구은행은 경영악화를 이유로 황 회장을 비롯해 연구소 내 5명을 권고사직하기에 이르렀다. 정규직 전환까지 이뤘던 황 회장의 상심은 더욱 컸다. 대구은행은 이들의 마음 정리를 위해 5일의 특별휴가를 줬다. 그러자 그는 함께 해고된 직원들과 ‘우리에게 아픔을 준 대구은행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놀러 가자’는 제안을 했고 이들이 향한 곳은 전남 해남에 위치한 땅끝마을이었다. 황 회장은 “당시에는 은행 건물도 보기 싫었고 제일 멀리 떨어진 곳을 가야 그나마 해고에 대한 생각이 지워질까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땅끝마을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에서도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섬인 보길도까지 향했다. 함께 놀러 온 동료들과 놀다 여인숙에 들어온 황 회장은 잠이 오지 않아 방파제로 나왔다. 그 순간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는 “한 조직에서 생활하며 제대로 생활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함께 자기계발에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감봉을 조건으로 다시 대구은행에 채용된 황 회장은 이후 자기계발에 몰두하게 됐다. 더불어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무엇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논어의 한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으며 회사생활을 즐긴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됐다. 연구소에서 중소기업 컨설팅을 맡았던 그는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구축했다. 이후 기술거래사·기업가치평가사·경제학 박사 등 금융 이외 자격증을 획득해 회사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황 회장은 “은행장이 되고 나서 회사 내 전문 직군을 만들고 제대로 된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며 “개인의 비전과 조직의 비전을 일치시키도록 해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회사가 돼야 좋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성장을 위해선 건강관리도 필수라고 조언했다. 황 회장은 걷기운동을 통해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고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충분한 수면을 확보한다고 했다.
지난 7일 대구 수성못에서 만난 황병우 DGB금융지주 회장이 수성못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DGB금융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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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동고동락하는 6대금융지주’로 도약 준비하는 DGB
지난 3월 DG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난 소회를 묻자 그는 “시중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지역뿐 아니라 거래할 수 없던 다른 지역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같은 긍정적인 신호를 통해 내부 직원들의 자신감이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역사회와 주주들과 소통하며 iM뱅크의 시중은행 전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했다.
특히 6대 금융지주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시중금융그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황 회장은 정부가 iM뱅크 시중은행 전환을 허용해준 이유 중 하나인 은행산업의 과점화를 깰 ‘메기’ 역할을 iM뱅크에게 맡긴 것이라며 “빠른 성장을 통해 은행산업의 5대 금융지주가 아닌 6대 금융지주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화답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구·경북지역에 70~80% 집중된 iM뱅크 자산을 수도권 등 타지역의 비중을 늘려 리밸런싱하는 과정을 거치겠다고도 했다.
순이익 감소 등 정량적인 평가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지역과의 공생이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올해 iM뱅크의 실적이 지난해보다 감소한 것을 언급하며 “대구·경북 지역이 어렵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iM뱅크는 지역과 운명공동체이며 지역이 어려울 때 은행이 이익만 내세우면 ‘누가 iM뱅크를 이용할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컨센서스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또 “iM증권(옛 하이투자증권)의 충당금 문제가 DGB금융 주가에 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지만, 올해 안에 해당 문제가 해소되면 내년부턴 시장의 평가도 나아지지 않겠냐”고 예측했다.
대구=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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