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중심의 연합에 반기 든,
제3세계 120여 개도국 '주목'
공급망 재편 요충지 이점 살려,
MS·애플 등 '빅 테크 격전지'로…
韓도 경제·문화적 공감대 커,
기업성장·경제안보 기회 삼아야
강대국은 새로운 보호주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공급망 실사지침(CSDDD)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 저감과 인권 보호를 내세우지만, 그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역외국 기업에는 높은 진입 장벽이다. 미국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에너지와 친환경 자동차 보급을 늘리되, 미국 외 생산 제품에 대해선 세액공제 등 특혜를 받기 어렵게 해놨다. 또 자국 반도체 생산시설에 총 390억달러의 보조금도 약속했다. 독일, 일본 등도 핵심 공급망을 자국 혹은 주변국에 확보하고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기업이 공장을 짓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만 보면 힘센 부자 나라가 글로벌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이 변화를 틈타 존재감을 더욱 높이는 나라도 있다. 공급망 재편에 필요한 핵심 자원을 보유하고, 생산인구가 많아 제조업 기반과 소비시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나라, 그래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글로벌 사우스’다.
글로벌 사우스는 주로 남반구와 북반구 저위도에 있는 아세안,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120여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통칭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국제연합(UN) 총회 결의안 표결에서 무려 35개국이 기권하면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EU 주도의 글로벌 연합을 예상한 국제사회는 충격을 받았고, 과감하게 반기를 든 글로벌 사우스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후 G7, G20, G77 등 주요 협의체는 글로벌 사우스를 주요 의제로 논의했고 이들의 경제적 중요성이 함께 부각됐다. 이곳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0%를 차지하지만, 다양한 국가로 이뤄진 만큼 경제 여건은 각기 다르다. 인구 대국이면서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반면, 만성적인 인프라 부족과 식량안보 문제가 여전한 곳이 많다. 그러나 성장 역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도, 사우디, 케냐 등은 스마트제조·스마트시티·스마트팜을 도입해 사회문제 해결과 함께 산업기반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멕시코, 남아공 등은 에너지와 광물자원을 활용하여 글로벌 제조업 기지로 성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EU 등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이 인도, 아세안 등에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면서 이곳이 ‘빅 테크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2%로 전망하며, 선진국 성장률은 1.7%, 신흥개도국은 4.3%로 전망한 근거다. 우리 정부도 그 영향력을 고려해 최근 발표한 통상정책 로드맵에 이들과의 협력 전략을 상세히 담았다. 글로벌 사우스와 다층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출과 투자, 공급망을 다변화한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우리 기업의 기회를 확보하는 동시에 핵심광물 공급망 등 우리 경제안보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 시장은 우리와 통하는 점이 많다. 현장에서 접해 보면 이들 지역에선 자동차, IT 등 우리 제품에 대한 신뢰가 높다. 최근에는 식품, 화장품 등 K-라이프스타일도 인기를 끈다. 케이팝(K-Pop) 등 우리 문화콘텐츠의 주요 소비시장도 아시아, 중동, 중남미 등이다. 감성에서도 공통점이 많다는 뜻이다.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가 짧은 시간에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경험은 그들에게 큰 열망이다. 얼마 전 만났던 한 중남미 신흥 부국의 장관은 한국기업이 와서 투자를 해주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국가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호감과 존중이 우리 기업의 수출과 해외 진출에 무형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만의 차별성을 살려 협력과 상생을 추구해 나간다면, 한국과 글로벌 사우스는 서로에게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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