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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죽기 전에 꼭 맛봐야” ‘정글의 법칙’에서 자랑하더니…이젠 씨가 말랐다 [지구,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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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께 SBS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소개된 앵무고기 [유튜브 SBS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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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과거 인기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서 죽기 전에 먹어봐야 할 음식 중 하나로 소개된 패롯피시(Parrotfish), 우리 말로는 앵무고기라고 한다. 화려한 색색에 큰 입 앵무새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정글의 법칙 출연을 계기로 종종 음식 리뷰에서 ‘미식 재료’, ‘끝내주는 술 안주’ 등으로 소개됐다. 주로 구이나 찜으로 먹는다.

그런데 이 앵무고기, 하도 잡아 먹다 보니 씨가 마를 지경에 이르렀다. 그 바람에 앵무고기가 주로 사는 열대 수역, 얕은 바다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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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음식 리뷰 채널에 미식 재료로 소개된 앵무고기 [유튜브 애주가TV참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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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고기는 날카로운 이빨로 바위에 붙은 해조류나 미생물 등을 뜯어먹으며 산다. 앵무고기의 먹이들은 산호초와 서식지와 빛, 영양분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다. 앵무고기가 줄어들자 산호가 줄어들었고, 산호초에 서식하던 수많은 생물종까지 차례로 자취를 감췄다.

이처럼 한 곳에서 무리 지어 사는 야생 동물 개체군이 지난 50년 간 전세계에서 평균 73%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앵무고기와 마찬가지로 한 개체군이 사라지면 개체군이 속한 생태계 전체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인간이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이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다다르기 전에 자연 친화적인 식량 생산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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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고기가 남획돼 개체 수가 감소하면 조류 증식으로 산호초가 쇠퇴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며, 산호에 의존하는 어류와 무척추동물 개체군 또한 감소한다. [세계자연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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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기금(WWF)은 10일 ‘지구생명보고서 2024’를 발간하고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등 전세계 야생 척추동물의 개체군 규모가 평균 73% 감소했다고 밝혔다. WWF가 1970년부터 2020년까지 전세계 5495종, 약 3만4836개의 개체군의 추세 추세를 분석한 결과다.

동물 개체 감소가 가장 심각한 곳은 담수 생태계로 나타났다. 담수 생태계에서 85%로 가장 큰 감소를 보였고, 육상 생태계에서 69%, 해양 생태계에서 56%의 개체군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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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5개 척추 동물종으로 구성된 3만4836개의 관찰된 개체군을 대상으로 산출한 1970년부터 2020년까지의 전세계 지구생명지수. 흰색선은 지수의 값을 나타내고 음영 영역은 지수 값의 통계적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세계자연기금(W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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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군이란 특정 시기와 환경에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한 종의 개체들을 가리킨다. 하나의 개체군이 줄어들면 해당 동식물이 생태계에서 하던 역할에 공백이 생기고, 이는 곧 생태계 전체의 파괴로 이어진다.

스스로 회복하는 힘도 잃게 된다.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유지된 개체군은 산불, 침입종, 과잉 채취,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 교란 요소도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을 갖추고 있다. 개체군이 줄어들면 회복탄력성이 줄어들고, 더욱 개체군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보고서는 개체군 감소로 파괴되는 생태계에 기후변화가 더해질 때, 전세계 곳곳에서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후와 생물종이 바뀌면서 약화된 생태계가 아예 새로운 상태로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숲이 초원으로, 초원이 사막으로, 산호초는 해조류 암초가 되는 식이다.

결국 생태계 파괴를 막으려면, 혹은 전조를 조기에 파악하려면 그곳에 사는 개체군의 변화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셈이다. 박민혜 WWF코리아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전세계 인류와 자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의 문턱에 서 있다”며 “전반적인 시스템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해결 불가능하다. 이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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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글로벌 식량 시스템 [세계자연기금(W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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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군을 줄어들게 하는 가장 큰 이유로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을 지목됐다. WWF에 따르면 지구 상에 생명체가 살고 있는 땅의 약 44%, 46억6000만㏊가 인간의 식량을 생산하는 데 쓰이고 있다. 가축 방목에 30억㏊, 농작물 재배에 12억㏊, 축산을 위한 사료를 생산하는 데 추가로 4억6000만㏊가 쓰인다.

보고서는 “글로벌 식량 시스템은 생물다양성 손실의 주 요인”이라며 “멸종위기의 포유류와 조류 종의 80% 이상이 농업에 의한 서식지 손실로 위험에 처해있고, 해양 생태계에서는 남획이 생물다양성 감소의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생물다양성 감소는 다시 식량 시스템을 위협한다. 수분을 매개하던 벌이 줄어들면서 수많은 식물뿐 아니라 농작물 생산에 비상이 걸린 것과 마찬가지다. 앵무고기가 사라진 카리브해에서도 어업 생산이 감소했다. 즉, 현재의 인류의 식량 생산 방식이 미래의 인류의 식량 공급을 해치는 모순에 부딪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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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중구 대한서울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세계자연기금(WWF)의 '2024 지구생명보고서' 기자간담회에서 이상훈(왼쪽부터) 국립생태원 습지연구팀장과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조대현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 한국 매니저, 박민혜 WWF코리아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WWF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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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F는 ‘네이처 포지티브’, 즉 자연 친화적인 식량 시스템을 제시했다. 같은 식량을 생산할 때에 생물 다양성의 보존에 도움이 되면서, 물과 토지 등의 자원을 덜 쓰는 방식을 가리킨다.

식량 손실과 폐기를 줄이는 것도 관건이다. 식량 시스템에는 식량을 생산뿐 아니라 가공과 유통, 소비와 폐기까지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함해서다. 전세계에서 생산된 식량의 3분의 1 가량은 버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의식이 변화하고 가치 소비, 환경 등을 중시하더라도 네이처 포지티브 방식으로 생산된 식량이 아니라면 지속가능한 식생활을 할 수 없다”며 “식량 시스템의 앞단, 생산과 가공, 유통 단계에서 전환이 필요하다”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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