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1 (토)

연구실 한자리 꿰찬 AI, "수학처럼 범용 학문 될 것"... "AI 만능주의는 금물" 경고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노벨위원회도 인정한 인공지능 영향력
분석은 AI가, 판단은 과학자가 하는 세상
AI 지휘할, 생각하는 창의 인재 길러내야
AI 활용 연구도 결국 상업화 넘어야 성공
한국일보

영국 런던에 있는 구글 딥마인드 본사. 이 회사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이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함께 9일(현지시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런던=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이 연달아 인공지능(AI) 분야에 돌아간 데 대해 과학계가 환영하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실제 연구 현장에서 AI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보수적이라고 소문난 노벨위원회가 이제 막 확산되고 있는 기술을 선택했다는 게 예상 밖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AI가 수학처럼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과학의 발전을 도울 거라면서도, 'AI 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노벨상 휩쓴 AI... "벌써?" "받을 때 됐다"

한국일보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인 인공신경망을 표현한 그림. 노벨위원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일 과학계에 따르면 올해 노벨상은 AI라는 도구를 만드는 단초를 제공한 과학자들, 이 도구를 이용해 인류의 숙제에 한 발짝 다가선 과학자들이 나란히 수상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AI를 가능케 한 기계학습(머신러닝)의 토대를 닦았다면, 화학상 수상자들은 AI를 이용해 오랜 난제였던 '단백질 설계와 구조 예측'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했다.

이번 수상은 파격적인 측면이 있다. 노벨위원회가 인류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보수적으로 평가해온 그간의 행보와 차이를 보여서다.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의 제자 백민경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수상자들 업적이 매우 파급력 있는 건 맞지만, 이제 막 관련 연구들이 뻗어나가고 있어 수상은 4~5년 뒤쯤을 예상했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머신러닝(기계학습)의 기초를 확립한 공로로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 존 홉필드(왼쪽)와 제프리 힌턴. 노벨위원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면 AI가 '받을 때가 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영희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수상자들이 보여준) 아이디어와 시도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것들이다. 다만 최근 들어 AI가 체계화, 보편화하면서 각광받다 보니 트렌디한 선택으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I 노벨상 받았으니 GPU 사 모은다?

한국일보

올해 노벨화학상 주인공이 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왼쪽)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해 보이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학계는 노벨위원회가 AI의 영향력을 인정했다는 해석에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AI가 과학 전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거듭나고, 실제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높이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엘른 문스 노벨물리위원회 위원장은 "수상자들의 연구는 이미 큰 혜택을 낳고 있다. 특정 성질을 지닌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신경망을 활용하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 연구 현장에서 AI는 이미 없어선 안 되는 존재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10대 기술 중 하나로 '과학적 발견을 위한 AI'를 선정했다. 유전체를 연구하는 이준호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다루는 데이터의 크기가 손으로 분석할 수 없을 만큼 커져서 분석은 AI가, 판단은 사람이 하는 세상이 됐다"며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과학자들이 AI라는 키를 잡은 셈"이라고 했다.
한국일보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그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학교육 분야에서는 AI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AI 관련 수업을 전교생이 필수 수강하도록 하는 대학도 있다. 가령 지난해부터 숙명여대 학생들은 모두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과 코딩 관련 수업을 듣고 있다. 윤성로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AI가 수학처럼 범용 학문이 돼서 어떤 분야에 있든 배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AI가 만능은 아니다. 계산기가 있어도 '얼마나 다양한 계산기를 만들까' '무엇을 계산할까'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이현숙 서울대 바이오인공지능연구단장은 "과학은 창의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AI를 이용하면 질문과 답이 풍부해지는 것은 맞지만, AI 가동에 필요한 그래픽 처리장치(GPU)를 사 모으거나 AI 관련 분야만 키우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며 "생각하는 인재를 기르는 방향의 꾸준한 투자가 절실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정우성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도 "AI 기술이 대중적이다 보니 (이번 수상이) 큰 사건처럼 여겨지는데, AI가 모든 걸 대체한다는 식으로 보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막연한 기대 대신 구체적 전략 세워야"


산업계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특히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는 AI 기술이 노벨화학상을 받은 데 대해 제약·바이오 업계는 관련 인재 영입과 신약개발 투자 확대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김화종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융합연구원장은 "AI 기술도 상업화해야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막연한 기대를 넘어 구체적이고 차별성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이 도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다만, 인류의 유전체 지도를 그린 1990년대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을 때도 마치 생로병사의 비밀이 풀릴 것처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여전히 생명현상엔 미지의 영역이 더 많다. 신현진 목암생명과학연구소장은 "단백질 구조 예측은 신약개발의 초기 단계"라며 "분자 수준을 넘어 인체 작용까지 파악하려면 더 뛰어난 AI가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