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1997년 11월 출간된 이 선대회장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나온다. 이 대목을 다시 떠올린 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고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낸 메시지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지휘하는 전 부회장은 최근 자사의 3분기 실적이 발표된 뒤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고 공언했다. 공격으로 자세를 고치겠단 결의다. 지금 삼성은 공격해야 할 시점에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최고에 이른 지위를 지키기만 하려다 수세에 몰렸다는 평가가 업계에선 지배적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진 것은 수비적인 태세로 인해 시장을 선점하지 못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지지부진한 건 자사만의 명확한 강점을 만들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선대회장과 탁구를 했던 이 회장은 공격의 진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최근 필리핀에서 외신 기자와 만나 위기에 놓인 파운드리, 시스템LSI(반도체 설계) 사업에 대해 "분사는 생각하지 않고 사업의 성장을 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 쓴 표현은 ‘헝그리(hungry)’였다. 다른 유사 표현보다도 굶주려 있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공격 외에는 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해외 투자은행 ‘맥쿼리’는 이달 초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12만5000원에서 6만4000원으로 낮추고 회사를 ‘허약한 반도체 거인’이라고 했다. 공격하지 않는 거인의 저자세를 꼬집은 표현으로 읽힌다. 거인은 공격에 나설 때 위력과 강대함이 발휘된다. 움츠러들기만 한다면 용감무쌍한 난쟁이보다도 못한 존재가 된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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