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여성 편"·"퐁퐁남" 여성혐오적 내용
SNS 중심 웹툰 불매운동…"필터링 미흡"
지난달부터 진행 중인 '2024 네이버웹툰 지상 최대 공모전’에 출품된 웹툰 '이세계 퐁퐁남'의 한 장면. 주인공이 스스로를 '퐁퐁남'으로 지칭하고 있다. 네이버웹툰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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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웹툰이 신작 발굴 공모전 1차 심사에서 여성과 기혼자에 대한 혐오가 담긴 신조어를 당당히 제목으로 내건 작품을 통과시켜 비판받고 있다. 일부 독자들은 네이버웹툰 불매를 선언하며 해당 작품의 탈락 및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국내 웹툰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 온 '2024 네이버웹툰 지상 최대 공모전'을 지난달 초 시작했다. 이 공모전에 출품된 웹툰 '이세계 퐁퐁남'은 지난달 25일 네이버웹툰 편집부의 1차 심사를 통과했고, 10일 현재 2차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세계 퐁퐁남'은 아내가 외도를 저지르자 절망한 남편이 이세계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퐁퐁남'이란 성적으로 방종하고 매력 있는 여성과 결혼한 남성을 '남이 먹고 남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세제'에 비유한 은어다. 여성 혐오뿐 아니라 기혼 남성에 대한 혐오까지 담겼다. 한편으론 경제 활동을 하면서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기혼 남성을 조롱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지난달부터 진행 중인 '2024 네이버웹툰 지상 최대 공모전’에 출품된 웹툰 '이세계 퐁퐁남'. 네이버웹툰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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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화까지 공개된 이 웹툰에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퐁퐁남'이라고 자각하는 장면이 담겼다. "법이 지나치게 여자 쪽에 유리하게 돼 있다"는 대사도 나온다. 여성이 이혼소송 중 자신의 얼굴을 때려 마치 가정폭력을 당한 척 가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만난 인물들은 그의 사연을 듣고 "그런 나라가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며 주인공 대신 분노한다.
"혐오 조장 만화"…네이버웹툰 불매까지
7일 엑스(X)에 올라온 '네이버웹툰불매' 글. 엑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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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만화"라며 해당 웹툰을 1차 심사에서 통과시킨 네이버웹툰 측에 항의했다. 웹툰 탈락 등의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결제를 하지 않겠다는 독자가 늘면서 7, 8일 엑스(X)에선 '네이버웹툰 불매'가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에 올랐다. 웹툰 고객센터나 공모전 문의 이메일로 항의한 뒤 인증하는 글들도 다수였다. 이들은 "모든 성별·연령대가 보는 웹툰에서 성별 갈등을 조장하는 내용은 부적절하다", "'법이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대사는 허위사실 유포"라고 지적했다.
웹툰에 등장한 '퐁퐁남', '설거지론'의 유래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다. 일부는 '설거지'가 집단강간의 의미로 사용된 과거 기사 등을 인용하면서 "문제의 소지가 큰 단어를 대형 콘텐츠 플랫폼에서 필터링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반면 '설거지'는 주식을 고점에서 개미 투자자들에게 대량 매도하는 주식 거래 은어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이세계 퐁퐁남' 작가는 만화 댓글 공지로 "(설거지는) 2000년대 초에도 사용된 주식 용어이며 저는 집단강간, 여혐 행위를 옹호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네이버웹툰 측은 "(편집부 판단만 거치는 1차 심사와 달리) 2차 심사는 조회 수, 별점 등의 독자 반응을 종합하여 진행된다"며 "해당 작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걸 알고 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심사하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 웹툰 방치' 지적 반복
2020년 8월 네이버웹툰 '복학왕'의 연재를 중단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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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네이버웹툰은 여러 차례 여성혐오 작품을 방치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2020년 유명 웹툰작가 기안84는 만화 '복학왕'에서 능력이 부족한 여성 인턴이 정규직 전환을 위해 남성 상사에게 성상납했음을 암시하는 장면을 그렸다. 같은 해 웹툰 '헬퍼2'는 미성년자 성폭행, 약물을 이용한 성폭행 및 여성 살해 등의 장면이 다수 포함돼 비판받고, 연재를 6개월간 중단했다.
웹툰 규제는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웹툰자율규제위원회(이하 자율규제위)가 담당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민원을 이첩하면, 자율규제위는 민원 사항을 검토하고 플랫폼에 서비스 종료, 내용 수정 등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웹툰 민원 신고 접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접수된 총 1,028건의 민원 중 495건만 규제 조치를 받았다. 높아진 독자 감수성에 비해 웹툰 규제가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정부 등 제삼자가 단속에 개입하기보단 플랫폼의 책임 강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일괄 기준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창작물 단속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오·남용의 위험이 크다"며 "플랫폼이 감수성 높은 독자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이를 운영에 반영하는 식으로 자체 정화가 이뤄지는 게 최선"이라고 제안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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