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샤오미 아닌 탄생 1년 남짓 '신생'이 업계 이끌어
시장 기대 반영...중국증시 내 관련주 급등세
'메타 출신 합류' 레이냐오, 연내 신제품 출시 계획
애플 출신이 이끄는 '이원'은 해외시장 공략 집중
“아마 현재 AI(인공지능) 안경 개발에 뛰어든 중국 기업은 수십곳에 달할 겁니다. 최소 10곳은 이미 정식으로 개발에 들어갔고, 이 중에는 샤오미·바이트댄스와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이제 막 시장에 발을 들인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중국 AR(증강현실) 전문기업인 레이냐오(雷鳥)의 장우천(張昊晨) 공동창업자가 최근 중국 제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메타가 지난달 26일 자체 개발한 스마트 안경 ‘오라이언’을 공개하며 ‘핸즈프리(손이 필요 없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케 한 가운데, 중국 기술업계가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이다. 시장 기대를 반영하듯 중국 증시 내 AI 안경 섹터는 지난 8일 하루에만 13% 폭등하는 등 최근 '상승 날개'를 단 중국 증시에서도 두드러진 강세를 보였다.
사실 메타의 오라이언이 공개되기 전인 올해 3분기쯤부터 AI 안경은 중국 기술업계의 최대 화두였다. 앞서 공개된 메타와 레이밴이 협업해 만든 AI 안경 ‘레이밴 메타’에 대한 시장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았지만 레이밴 메타는 지난해 9월 처음으로 공개된 이후, 지난 4월에 음성인식·번역 등 기능이 추가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미국 IT(정보통신) 전문 매체 더버지에 따르면 레이밴 메타 최신 버전의 글로벌 판매량은 출시 한 달 만에 100만개를 돌파했고, 출시 단 몇 달 만에 이전 버전의 총판매량을 넘어섰다. 중국 궈진증권은 올해 레이밴 메타의 글로벌 판매량이 600만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메타 출신' 이끄는 '레이냐오'
장 창업자가 말한 것처럼 중국에서는 AI 안경 개발에 있어 스타트업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레이냐오 역시 중국 대표 가전 브랜드 TCL의 투자를 받아 지난 2021년 10월에 설립된 신생기업이다. 텐센트와 DJI, 오포(OPPO) 등 중국 굴지의 IT 기업은 물론 메타 출신 엔지니어까지 합류해 팀을 꾸리면서 레이냐오는 창업 반년 만인 2022년 4월에 처음으로 스마트 안경 '레이냐오 에어(Air)'를 선보였다. 일반 선글라스와 비슷한 외관인 레이냐오 에어는 착용하면 200인치에 달하는 내부 스크린으로 접속돼 영화관람, 업무처리 등이 가능하다. 렌즈를 포함한 무게가 75g에 불과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가격은 40만원대. 출시 직후 알리바바·징둥 등 중국 이커머스에서 판매 1위(해당 카테고리)를 달성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뿔테 안경처럼 생긴 AR 안경 '레이냐오 X2'가 출시됐다. 레이냐오 X2는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프로젝터와 퀄컴의 혼합현실(XR) 플랫폼을 장착해 AR 구현이 가능하다. 1600만 화소 카메라도 탑재했다. 해외여행 시 실시간 내비게이션과 통역으로 활용할 수 있어 ‘안경버전 스마트폰’이라는 게 레이냐오측 설명이다. 가격은 레이냐오 에어의 약 두배인 4999위안(약 94만원)으로 책정됐다.
지난 6개월 동안 무려 5억 위안(약 953억원)의 자금 조달에 성공한 레이냐오는 연내에 디자인 요소를 강화한 신제품 ‘레이냐오 X3’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8월 말에는 보스(博士)안경과 합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보스안경은 1993년 탄생한 중국 최대 안경체인으로 시장 점유율이 74%에 달한다. 중국 안경체인 최초의 상장사이기도 하다. 보스안경과의 협력으로 오프라인 매장이 없었던 레이냐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레이냐오 제품은 오프라인 매장이 없어 시착이 불가능하고, 수리도 어렵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혀왔다. 보스안경은 중국 전역에 5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레이냐오는 메타의 오라이언이 출시 시점이 정해지지 않은 시제품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메타를 견제하기도 했다. 리훙웨이(李宏偉) 레이냐오 창업자는 “내년에 (오라이언의) 완성 버전이 출시되지 못할 것이라는 걸 100% 확신한다”면서 “레이냐오 X3는 올해 말까지 대량 생산 준비를 마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플 출신 엔지니어가 창업한 '이원'
역시 신생기업인 이원(逸文·Even Realities)도 최근 창립 1년 만에 글로벌 시장에서 스마트 안경 ‘G1’을 출시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G1은 안경에 장착된 마이크로 LED 프로젝터와 특수 렌즈를 통해 사용자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내비게이션과 텔레프롬프터(자막기)가 G1의 핵심 기능이라고 짚었다.
레이냐오와 다르게 이원은 해외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G1은 현재 중국에서는 출시되지 않았고, 지난 8월 22일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다. 본사는 중국 선전에 있지만, 독일 베를린에도 디자인팀을 포함한 글로벌 본사를 세우고 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원의 왕샤오이(王骁逸) 창업자가 애플워치 개발에 참여했던 애플 엔지니어 출신인 것도 이원이 해외시장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다.
이원은 처음부터 디자인을 제품의 핵심 경쟁력으로 삼았다. 독일 출신 안경 디자이너가 공동창업자로 합류한 것만 봐도 이원이 디자인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왕샤오이 창업자는 “사용자들이 하루 종일 이 제품을 착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IT 기기 이전에) 우선 정말 훌륭한 안경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자인에 신경 쓴 만큼 ‘가성비’는 떨어진다. G1 가격은 599달러(약 80만원)로, 레이밴 메타 판매가(300달러)를 훌쩍 웃돈다. 시력 보정 렌즈와 선글라스용 렌즈 등도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이원에 따르면 고가에도 불구하고 G1의 판매량은 이미 예상을 뛰어넘었다.
디자인을 강점으로 내세운 이원은 이미 중국 최대 벤처투자사 등 투자자들로부터 1000만 달러의 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SCMP는 “안경 디자인에 중점을 둔 게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면서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 착용감이 편한 데다 일반 안경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스타일리시하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샤오미가 투자한 스타트업 펑차오(蜂巢·Superhexa)도 최근 AI 안경 ‘제환(界環)’을 공개했다. 펑차오가 내세운 경쟁력은 가성비로, 제환의 판매가는 699위안(약 13만9000원)이다. 지난 4월과 5월에는 IT 공룡 샤오미와 화웨이가 각각 AI 안경을 출시한 바 있다.
다만 중국 기업들이 내놓은 AI 안경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일례로 스마트폰 제조사 메이주는 보스안경과 협업해 보스안경 전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사 AI 안경을 판매했지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기술력에 있어 메타 등 글로벌 기업들과 아직 격차가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매체 펑파이는 "중국 기업들의 AI 안경 개발은 여전히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내비게이션·실시간 데이터 관련 기술적 병목 현상, 개인 정보 보호·보안 문제, 높은 개발 비용 등을 지적했다.
아주경제=이지원 기자 jeewonlee@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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