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9 (수)

[사설]1년도 안 다니고 퇴직, 9년 새 6배… 뿌리 흔들리는 공직사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재직 기간이 1년이 안 된 국가공무원 퇴직자가 3021명으로 9년 새 5.6배 늘었다.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공직에 들어왔지만 1년도 다니지 않고 바로 그만두는 이들이 이처럼 많다는 뜻이다. 재직 기간을 5년 미만으로 넓히면 퇴직자 수는 지난해 1만3568명으로 같은 기간 2.6배 늘었다. 올해 국가공무원 채용 인원(5708명)의 두 배가 넘는 공무원이 이미 공직을 떠난 셈이다.

저연차의 공직 이탈 현상이 심각해진 것은 불합리한 공직 문화와 낮은 보수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저연차 공무원은 연공서열에 따른 권위적인 조직 문화에 좌절감을 토로한다. 민원이 많고 힘든 업무를 저연차 공무원에게 몰아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성과와 무관한 평가 제도와 임금 체계는 의욕을 떨어뜨린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돌아가며 부서장 식사 당번을 하거나 인사철 떡 돌리기, 전별금 전달 같은 잘못된 관행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올해 9급 초임 공무원의 월평균 급여액은 222만 원이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월 최저임금보다 16만 원가량 많고, 세금을 제하면 실수령액이 2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행정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늘어나 업무 강도는 세졌다. 사회적, 자연적 재난에 대응하느라 격무에 시달리고 악성 민원은 극성스럽다.

저연차뿐만 아니라 공무원 조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간 연차 퇴직자 수도 급증했다. 재직 기간이 5년 이상 10년 미만인 국가공무원 퇴직자 수는 3613명으로 9년 새 2.8배가 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청산’이라며 실무자들이 징계를 받거나 한직으로 밀려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과장이 되기 전에 민간으로 이직하려는 공무원이 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선 대왕고래 프로젝트, 보건복지부에선 의료 개혁 부서를 맡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돈다.

청년들이 한때 공무원 입직에만 매달렸던 공시 열풍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수한 인재들이 공직을 외면해 행정의 질이 저하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공익에 이바지한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성과에 근거한 인사 및 보상 체계를 도입하고, 불필요한 업무와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 등을 과감히 쇄신해야 한다. 청년 공무원조차 품지 못하는 경직된 조직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이 나올 순 없다.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