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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유승호, 25년 차 ‘원로 배우’도 떨게 한 연극 무대 “일단 부딪혀 보자”[SS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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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배우 유승호가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연극 ‘엔질스 인 아메리카’로 연기 변신한 도전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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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끝날 것 같지 않던 긴 항해를 마쳤다. 스크린에 익숙해서인지 돛을 올렸을 땐 겁부터 났다. 검은 파도가 칠 땐 두려움이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 날도 있었다. 총 60회 공연. 지나고 보니, 이젠 그 순간이 시원섭섭하고 그립다. 배우 유승호의 이야기다.

유승호는 지난해 웨이브 스릴러 드라마 ‘거래’ 이후 약 일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선택한 차기작은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연극이었다. 25년 차 배우가 연극배우로서 다시 데뷔한 것. 지난 8월6일부터 9월28일까지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원:밀레니엄이 다가온다(이하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프라이어’로 살았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1980년대 보수적인 미국을 배경으로 동성애자, 흑인, 유대인, 모르몬교인, 에이즈 환자 등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정체성을 각기 다른 신념을 가진 인물들이 풀어가는 이야기다.

극 중 유승호는 성소수자이자 에이즈로 고통스러워하는 ‘프라이어’ 역을 열연했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청순·소년미를 과감히 벗어던진 도전이었다.

유승호는 “배우로서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그렇듯 아프고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면서도 “그것조차 일주일 넘게 지났다. 벌써 그리운 순간이 생긴다”고 말했다.

◇ 스크린 밖 낯선 환경…‘공부의 신’으로 돌아왔다

때론 공연을 본 관객들의 피드백이 그의 가슴을 날카롭게 찌르기도 했다. 창피한 날도 있었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 누구나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당연지사(當然之事). ‘프라이어’를 꾸준히 연구해 유승호만의 색깔로 인물을 완성해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여야 하는 배우이지만, 드라마와 영화만 했던 탓에 연극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왜’라는 의문은 그의 숨통을 조이기도 했다. 함께 무대에 있지만, 연극·뮤지컬 경험이 있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그의 부족함을 느꼈다.

연극은 또 다른 배움의 시작이었다. 유승호는 “연극 무대는 관객과 직접 만나는 공간이다. 본인의 힘으로 2시간 이상을 끌고 가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매체의 편집에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스스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많이 떤 나머지 무대에 오르는 것조차 두려웠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배우가 가져야 하는 덕목과 기술 등을 배우며 이겨내려고 했다”라며 “28~29회차가 됐을 땐 ‘프라이어’를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모든 과정이 발목을 잡았지만, 부족한 점은 보완하려고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연극이라는 분야도 낯선데, 대본 자체도 20년이 넘었다. 그가 오른 무대는 밀레니엄 시대 직전의 미국 사회를 남다른 해석으로 풀이해야 하는, 까다로운 요구조건마저 주어진 작품이었다. 한국 정서에 맞춰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모든 출연 배우가 머리를 맞대고 역사뿐만 아니라, 어쩌면 예민한 부분인 종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까지 공부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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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는 연극 무대를 통해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자신을 발견했다.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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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변의 아이콘, ‘반항’ 아닌 ‘팔색조’ 매력 어필

절대 쉽지 않은 주제였다. 하지만 그는 ‘배우’ 유승호다. 사회적 약자가 가진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그리려고 억지로 짜내지 않았다. 모든 스토리의 끝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 마침내 그만의 ‘프라이어’를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유승호는 “과연 ‘프라이어’와 ‘루이스’의 감정 무게는 아무도 모른다. 에이즈라는 병에 걸렸다고 해서 얕보는 것도 아니다”라며 “사랑과 아픔은 동일하다. 모든 주제가 민감할 뿐, 그들의 사랑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무거운 스토리에 ‘웃음’ 한 스푼을 넣었다. 200분 동안 관객과 함께 달릴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암울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캐릭터를) 무겁게 다루지 않으려면 웃는 순간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대본을 바꿀 수 없으니, 큰 틀에서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웃음을 주고 싶었다.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했지만, 무겁지 않게 잘 반죽했기에 많은 관객이 이 감정을 받아줘서 함께 웃을 수 있었다”라고 설했다.

7살에 데뷔한 꼬마가 이젠 30대에 접어든 ‘원로 배우’가 됐다. 그런데 아직도 겁이 많아 굴러들어 온 기회도 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연극 도전을 통해 “내 자리가 아니더라도 일단 부딪혀 보자”라는 ‘깡’이 생겼다.

유승호는 “누군가를 대신해야 할 배우일 때도 있다. 또 그 역할을 원했던 배우의 자리를 내가 박차고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오로지 내 시간을 전부 투입해, 내게 주어진 기회를 잘 그려내야 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강조했다.

욕심만으로 섣부른 선택은 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유승호는 “주변에서 ‘넌 할 수 있다’고 부추겨도 연극과 뮤지컬은 가볍게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를 테스트하고 의심하고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나만 아는 진심이 아닌 관객과 함께 느끼는 특별한 감정을 찾아, 이 분야만의 희소성과 유니크한 매력의 가치를 공감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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