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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필동정담] 러닝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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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뛰는 행위를 이렇게 예찬했다. 그는 매일 10㎞를 달린다. 소설 집필을 위한 체력과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신의 묘비명에 '작가 그리고 러너'라고 적어 달라고도 했다.

'달리기'라는 책을 쓴 프랑스 작가 기욤 르 블랑은 뛰는 것을 '자기를 넘어섬과 동시에 자기 안에 존재하기 위한 시도', '자신의 허약함에 동감하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요즘 주변에도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진 이들이 많다. 코로나19로 실내운동이 제한되자 사람들이 뛰기시작했는데, MZ세대가 가세하면서 달리기 열풍이 거세다. 러닝도 '장비빨'이다보니 인기 있는 러닝화는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성능에 따라 줄을 세운 '러닝화 계급도'까지 등장했다.

달리기 소모임인 '러닝 크루(running crew)'도 빠르게 늘고 있다. 혼자 달리는 것은 지루한 일이기도 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멈추게 되는데 함께 뛰면 오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수십 명이 보행로를 점유하거나 '파이팅'을 외치고, 스피커로 음악을 트는 등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민원이 잇따르자 일부 지자체가 대응에 나섰다. 서울 서초구는 반포종합운동장에서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했고, 송파구도 석촌호수 산책로에 3인 이상 달리기를 자제해 달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이에 대해 지나친 대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민폐족' 때문에 문화적 현상인 러닝크루가 제재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마녀사냥은 안 된다. 하지만 과도기에 있는 달리기 문화가 정착되려면 러너들이 '달리기 매너'부터 지키는 게 급선무다. 소음 자제, 단체런 지양 등 '러닝 에티켓'을 만들고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모두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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