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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영주 무섬마을 ‘만죽재’ ‘해우당’ 고택, 국가민속문화유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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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선성김씨의 가옥·생활 유물 함께 국가유산 지정 예고

“고택 보존, 가문 역사와 전통의 전승 잘 유지”

경향신문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이 예고된 경북 영주의 무섬마을 내 ‘만죽재 고택’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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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대대로 살아온 유서 깊은 전통마을인 경북 영주 무섬마을의 옛집(고택)들이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으로 전통을 이어온 영주 무섬마을의 대표적 고택 ‘만죽재 고택’과 ‘해우당 고택’을 전해져 오는 생활유물과 함께 각각 국가민속문화유산 ‘영주 만죽재·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이란 명칭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7일 밝혔다.

‘만죽재 고택’은 1666년 지어진 이후 360년 동안 집터와 가옥이 큰 변형 없이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죽재 고택은 무섬마을에 처음 정착한(입향)한 반남박씨 박수(1641~1729)가 지은 고택으로 이후 13대 후손들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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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만죽재 고택에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유물인 ‘항일 격문집’(왼쪽)과 규방가사집. 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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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죽재 고택은 조선 중·후기 전형적인 상류주택을 대표하는 ‘ㅁ’자형 뜰집이다. 뜰집은 안채와 사랑채·부속채 등이 하나로 연결돼 ‘ㅁ’자형을 이루는 주택을 말한다. 주로 경북 북부지방에서 유교적 종법질서의 표현 방식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건축적 특징이기도 하다. 고택 뒤에는 내성천과 무섬마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장소에 교육과 시문학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섬계초당이 자리하고 있다. 섬계초당은 2008년 복원된 것이다.

만죽재 고택에는 고택과 더불어 가문의 전통을 드러내는 각종 생활유물들도 전해지고 있다. 8대조 박승훈이 필사한 항일운동 격문집을 비롯해 혼례 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혼인문서인 혼서지, 친지간의 우애 등을 강조하는 규방가사집, 놀이기구의 하나인 승경도, 집 구성원을 관에 보고하던 호구단자 등이 대표적이다.

또 만죽재 현판과 원본 글씨, 종이와 붓·먹·벼루의 문방용품, 소 먹이를 주던 여물통, 통나무계단 등도 남아 있다. 국가유산청은 “가문의 전통을 이어온 가풍, 인물, 생활자료 등 복합적 전승체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며 “고택과 이들 각종 생활유물을 함께 국가민속문화유산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로 지정예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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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된 경북 영주 무섬마을 내 ‘해우당 고택’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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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고택’은 무섬 마을에 처음 정착한 선성김씨 김대(1732~1809)의 손자인 김영각(1809~1876)이 1800년대 초반에 건립한 고택이다.

김영각의 아들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1877~1879년 사이에 고택을 크게 수리한 이후 지금까지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낙풍은 흥선대원군의 친구이며, 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내기도 했다. 현재 사랑채에 걸려 있는 해우당 현판이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해우당 고택도 ‘ㅁ’자형 뜰집이다. 국가유산청은 “안방에서 태어나서 목방, 작은사랑, 큰사랑, 빈소방으로 옮겨가는 생애 주기와 생활을 유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며 “주변 환경을 극복하는 건축적 지혜도 곳곳에 남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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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해우당 고택에 전해 내려오는 과거시험 답안지(왼쪽)와 ‘대은정’ 현판. 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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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고택은 침수가 잦았던 무섬마을의 환경적인 결점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 장독을 야외에 두지 않고 별도로 장독 보관을 위한 장고방을 갖췄다. 또 성주단지(집 건물을 수호하는 성주를 모셔두는 단지)를 부엌이나 마루가 아닌 높은 다락에 뒀으며, 높은 다락을 많이 만들어 수납공간으로 사용한 점 등도 불리한 자연환경을 잘 극복한 건축적 지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아가 있던 별도의 방앗간 건물도 남아 있다.

해우당 고택에는 가문의 전통, 출신 인물들의 학문적 깊이와 주변 인물과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책과 문서, 서화류, 탁본 등의 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김낙풍이 작성한 과거답안지를 비롯해 성주단지, 갓을 보관하던 갓함, 해우당 현판 및 글씨, 부속 건물인 대은정 현판 및 글씨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유산청은 “해우당 고택과 방앗간채, 다양한 유물을 함께 국가민속문화유산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영주 만죽재·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은 30일의 예고 기간 동안 의견수렴 후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최종 지정된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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