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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성폭행 진술 일관돼도 '증거' 우선"...수사기관서 사라진 '성인지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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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캡션 수정 부탁드립니다~~ 경찰 로고 DB[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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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20대 A씨는 40대 사장에게 6개월 동안 수십 차례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카페를 쉽게 그만둘 수 없었던 A씨는 이 같은 행위를 참다가 결국 최근 성추행 상황 4건을 녹음해 경찰에 고소하기로 마음 먹었다. A씨는 6개월 동안 있었던 피해 사실 모두를 고소하고 싶었지만 경찰이 증거 제출을 엄격히 요구해 녹취록이 있는 4건밖에 고소하지 못했다.

# 대학생 B씨는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3개월 동안 7번 성폭행을 당했다. 친구와 관계 때문에 고소를 망설이던 B씨는 참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하게 됐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피해 날짜와 시간, 장소 등이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은 피해 사실은 고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대법원이 '성범죄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견지하더라도 피해자 진술에 따라 무조건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성인지 감수성'을 다소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판례를 내놨다. 법조계는 이 판결 이후 수사기관이 명확한 증거를 요구하는 등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7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최근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성폭행·성추행 피해자들이 형사 고소를 할 때 고소장 작성과 증거 제출을 이전보다 깐깐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장에 피해 사실을 적을 때 정확한 날짜가 특정되지 않거나 피해 상황을 자세히 적는다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녹취 등 증거가 없으면 받아주지 않는 식이다.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A씨 고소를 돕고 있다는 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횟수는 수십 번에 달하지만 이 중 정확하게 상황을 녹음한 건은 4건에 불과했는데, 경찰이 증거 제출을 엄격하게 요구했다"며 "피해자가 6개월 동안 당한 피해가 고작 4번으로 축소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최근 대법원 판례가 수사기관의 이 같은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2018년 4월 대법원이 처음 정립한 성인지 감수성은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을 할 때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기준을 말한다. 성인지 감수성 판례가 나온 이후 법원은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피해자 진술뿐이라 하더라도 그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다면 유죄의 증거로 인정해왔다.

하지만 지난 1월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원심이 유죄로 판단한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기존 '성인지 감수성' 판례와 다소 다른 해석을 내놨다. 대법원은 "성범죄 피해자 진술에 대해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보더라도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타당성뿐만 아니라 객관적 정황, 다른 경험칙 등에 비춰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해당 판결이 나온 이후 논란이 '성인지 감수성 판례를 뒤집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대법원 관계자는 "피해자 진술이 믿을 만한데도 불구하고 피고인 사정을 고려하면 유죄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일 뿐 기존 판례를 반박하거나 바꾼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사기관 일선에서는 이전과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주장한다. B씨 고소를 대리한 또 다른 변호사는 "피해자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더라도 피해 날짜가 정확하게 특정되지 않으면 고소를 받아주지 않는 등 경찰 측 분위기가 작년과 올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며 "혹시나 대법원에서 이 같은 취지의 판결이 계속 나오게 되면 2018년 이전처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무력화하는 상황까지 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성폭행 사건은 일선 경찰들이 특히 피해자 진술에 귀 기울이며 2차 가해 등 추가적인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증거를 바탕으로 원칙에 따른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를 통해 피해자들이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주경제=남가언 기자 eon@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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