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부 정일환 부장 |
제목 보고 설레신 분, 혹은 분노하신 분을 위한 세줄 요약.
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모 KBS PD가 검사를 사칭할 수 있도록 검사 이름과 사투리를 쓴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최PD가 사칭 장면 때문에 방송을 주저하자 자신이 얼굴을 가린 제보자 역할로 등장한 장면을 만들었다가 대법원에서 150만 원의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2. 이재명 대표는 선거 토론에서 “검사사칭 사건은 누명 쓴 것”이라고 말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무죄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과 이 대표 간의 통화 녹취가 발견되면서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됐다.
3. 리플리 증후군이 “지구는 네모”라고 말한다면 거짓말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은 대충 10가지 정도 버전이 존재하는 '이재명 대표의 부친은 누구였을까’ 이지만 논란의 소지가 많으니 넘어가고, 이 대표의 정치적 명운을 결정할 ‘위증교사 녹취록’ 이야기를 해보자. 검찰이 3년 형을 구형하던 날, 이 대표가 언론을 향해 “직접 들어보는 노력 정도는 하라”며 준엄하게 꾸짖으시길래 게으른 손발을 움직여 22년에 걸쳐 일어난 일을 하나하나 다시 보고 녹취록도 듣는 노오력을 해봤다.
일단 개요는 이렇다. ‘이 대표가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수행비서 김진성씨에게 위증을 부추겼다’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 대표가 들어보라고 한 녹취록은 이 대표와 김씨간의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진실까지 가는 길은 멀다. 2002년 검사사칭에서 출발해 2023년 위증교사 혐의까지 이어지는 발걸음을 따라가려면 사건의 지평선을 넘나들어야 한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으로 가보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최모 KBS PD는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김병량 성남시장과 시행업체의 유착 의혹을 취재 중이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PD를 만나 ‘수원지검 A검사’ 이름을 알려줬고, 최 PD는 김병량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A검사'라면서 이것저것 캐물었다.
‘추적 60분’을 통해 방송이 나간 뒤 이 대표가 원본 녹음테이프를 공개하자 김병량 시장과 이재명 대표 간의 소송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공무원(검사)자격사칭, 무고 등으로 기소됐다. 이 대표는 녹음테이프를 “정당하게 제보자로부터 받은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제보자 제공’ 장면은 이 대표 제안에 따라 연출된 것이었다. 최PD가 “검사를 사칭한 내용을 그대로 방송할 수 없다”며 난색을 보이자 이 대표가 얼굴을 가린 제보자 역할을 맡았다. 법원은 “피고인(이재명 대표)이 PD와 공모해 검사의 자격을 사칭하여 그 직권을 행사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세월이 흘러 2018년. 그 사이 성남시장을 거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성장한 이 대표는 선거방송 토론에서 검사사칭 사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PD가 사칭했는데 내가 도와줬다는 누명을 썼다”고 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허위사실유포)로 기소됐다. 이듬해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병량 성남시장 비서 김진성씨는 이재명 대표에게 유리한 진술로 일관했고,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4년 후인 2022년, 검찰이 백현동 개발 비리를 수사를 위해 김진성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김씨의 옛 휴대폰에는 1심 재판 직전 김씨와 이 대표가 나눈 대화가 녹음돼 있었다. 4번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 ‘김병량 시장이 최 PD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대신 김 시장과 KBS 간에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내용의 증언을 부탁했고 김씨는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대표는 김씨에게 텔레그램으로 변론요지서를 보내 주겠다고 했고,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는 말도 했다. 2023년 10월 검찰은 김씨를 위증범으로, 이 대표를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이 대표 요구에 따라 알지 못하고, 들은 기억도 없는 내용을 위증했다”고 자백했다. 올해 9월 30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3년 형을 구형했고, 이 대표는 ‘있는 대로’ ‘기억나는 대로’라는 표현이 12군데나 있는데도 검찰이 불리한 부분만을 조작·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진실이 무엇이고 누가 거짓말을 한다고 볼지는 각자 옳다고 믿는 바에 달렸다. 다만, 판단을 돕기 위해 마지막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 작년 9월로 가자. 당시 백현동 개발 비리와 대북송금 의혹, 위증교사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이 대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영장심사를 맡은 판사는 800자에 달하는 장문의 기각 사유에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면서도 이렇게 적었다. “위증교사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투데이/정일환 기자 (wha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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