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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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 승객들은 저마다의 스마트폰을 본다. 작은 기계여서 휴대가 편하고, 옆 사람에게 별 피해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신기하며 자극적인 것들이 눈부시게 선명한 화면에서 끝없이 재생된다. 서서 갈 때는 앉아 있는 승객의 화면을 잠깐씩 같이 보게 된다. 쌍방 모두는 본의가 아니다. 어떤 분이 폴더를 펼쳐 큰 화면으로 보여준 단체 대화방의 방 제목은 ‘82년 졸업 동기생 모임’이었다. 다시 쓰지만, 82년생이 아니다. 그곳에는 898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쓸어 넘겨지는 덕담들 사이로 환자복이 비쳐 보였다. 병원 체험담과 위로, 그리고 친구들 간의 의료 상담이 길게 이어지는 듯했다. 때가 되면, 환자복은 중장년층의 단체 대화방을 주름잡던 등산복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환자복이 지급된다. 외래 환자나 응급실 환자에게 주어지지 않는 혜택 아닌 혜택이다. 예고 없는 큰 병으로 환자가 되면 계획에 없는 일정을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 병원에 내는 돈 또한 계획에 전혀 없던 지출이다. 익숙하게 지냈던 넓은 세상이 병실의 작은 침대 하나의 크기로 좁아 든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열흘가량을 보내야 하는데, 여행 갈 때처럼 옷을 싼다면 큰 가방이 두 개쯤은 필요할 것이다. 질병 치료 외에도, 입원 기간 중 느끼는 막막함의 한가운데에서 환자복이라는 단체복은 달갑지 않지만 동시에 안전한 곳에 왔다는 안도감과 소속감을 준다.
많은 병원의 다양한 환자복을 보아왔다. 그 옷들 어느 것에도 미학적인 감탄을 해본 적은 없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묘하게도 비슷한 느낌이다. 춘하추동이 없고, 모두 얇은 긴 옷이다. 병원 밖으로 입고 나가면 창피함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병원복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하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환자가 되어 입어본 적도 있다. 재질은 겉보기보다 튼튼했다. 자연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입자마자 무언가에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 하나로 힘이 빠진 나를 느낄 수 있었고, 무엇인가를 ‘당할 준비’가 됐다는 항복의 복식을 한 듯했다.
이 옷의 재질은 면이다. 병원 직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특장점을 열거해보자. 우선 땀 흡수가 잘되고 통기성이 좋아 피부에 자극이 덜하다. 품이 넉넉하여 몸매 노출의 위험이 없고, 세척도 용이하다.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이 중요한데, 피부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지퍼가 없고 대신 둥근 단추와 짧은 끈이 있다. 중환자실 옷에는 욕창 예방을 위해 목덜미에 붙어 있어야 할 사이즈 라벨까지 없앤 세심한 배려도 있다.
병원에 새로운 환자복을 입고 다니는 분들이 보였다. 리넨 담당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기존 옷과 비교해 화사하게 디자인했다고 한다. 디자인에 담긴 상징과 철학에 대한 해설의 현란함에 기가 죽은 나는 그저 전화기 너머로 고개를 끄덕였다. 20년 만에야 바꾼 이유를 물으니, 환자복에는 수가를 따로 발행할 수 없어 투자를 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름답거나 계절에 맞게 만들 여유가 없는 것이다.
입원 관리료는 의학 관리료(40%), 간호 관리료(35%), 그리고 기타 병원 관리료(35%)로 구성된다. 많은 환자들이 좋아하는 5인실 기준 입원 관리료의 건강보험 수가는 하루 12만 원이다. 모텔 비용 정도다. 환자복은 기타 병원 관리료 항목에 포함되는데, 여기에서 비품 사용비, 시설 관리 비용(인건비, 전기료, 수도료, 수리 비용 등), 시설 감가상각비 등과 나누어 경쟁을 한다. 사실 경쟁이 되질 않는다. 면으로 만들어져 돈도 못 버는 옷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를 봐!’, ‘저 돈을 내 몫으로 다 받아도 손해야!’라고 울고 있는 것들에게 다 양보하고, 말없이 고이 접혀 다시 20년을 기다린다.
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타임 아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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