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 '선호지→험지 근무 원칙' 예외로
부부 같은 공간에 파견하는 파격 조치까지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만나 한중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발리=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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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들의 무덤.'
세계 각국 외교관들이 부임지로서 '중국'을 암암리에 이르는 표현입니다. 한국 외교가도 예외는 아닙니다. 2018년 베이징 주중대사관 근무 희망자가 0명인 치욕을 맛봤습니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는 그해 해외연수 대상 외교공무원 33명 가운데 중국 희망자가 1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지적되기도 했죠. 몇 해 전 인기 근무지에 지원했다가 경합 끝에 탈락한 외교관이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후자를 선택한 일화는 외교부 안팎에서 꾸준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명색이 G2이자 대국인 기회의 땅, 그리고 4강(미·중·일·러) 외교 현안의 중심지인 중국을, 외교관들은 왜 이리 기피하게 된 걸까요.
외교관들은 왜 중국 근무를 기피할까
외교가의 오랜 '중국 기피 현상'의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긴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스모그나 미세먼지 같은 살기 힘든 '환경'이 주 요인으로 꼽혔죠.
최근 경향은 좀 더 복잡합니다. 우선 '외교관의 무덤'이라는 표현처럼, 외교관으로 성장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인식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한 외교부 고위 관료는 6일 "외교관의 역량을 평가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정보'와 '네트워크'인데, 젊은 외교관들은 폐쇄적인 환경의 중국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쌓기에도 우호적이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올 초 잇따라 제기된 정재호 주중대사의 갑질과 비위 의혹이나 과거 베이징 주중대사관 내 성추행 등 '인적 요소'도 기피의 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교부 내에서 중국 관련 업무 경험은 일종의 '주홍글씨'가 됐다는 게 외교관들의 전언입니다. '중국'에 한번 발을 담그고 나면, 공직 생활 내내 외교부 내 중국 담당 조직인 동북아시아국이나 중국 공관만 돌게 된다는 우려가 직원들 사이에 만연합니다. 중국 업무와 관련해 한 외교 공무원은 "젊은 구성원들 사이에는 중국에 한번 코 꿰면 맨날 '중국 공관→본부 동북아국→중국 공관'만 오가게 될 것 같다는 인식이 있다"며 "결국 인사 제도를 통해 중국 외교 인력이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줘 불균형을 풀어줘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중국 근무할 사람 없나요?" 외교부의 고군분투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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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외교부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교역과 북한 문제 등으로 대중 외교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는 만큼, 제도적인 부분을 고치고 관행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편을 동원해 중국 지원을 독려하고 있죠. 지난해부터 해외연수제도에 '중국어 연수 지원자'에 한해 영미권 연수 1년의 기회를 더 얹어 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객을 끌어모으려는 '1+1'인 셈입니다.
최근 외교가에서는 베이징 공관에 부부를 함께 파견한 소식이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통상 외교부는 부부를 같은 국가에 보내더라도 서로 다른 공관에서 근무하게 합니다. 인사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따라서 이처럼 같은 공관으로 함께 파견하는 건 극히 이례적입니다. 중국 근무 지원자가 워낙 없다보니 관례도 원칙도 모두 깨버린 것이지요.
이에 더해 특단의 대책으로 외교부의 큰 인사 원칙인 '냉탕-온탕' 순환근무까지 흔들었습니다. 외교관들은 '인사 예규'에 따라 재외공관 근무 시 '가·나·다·라급'으로 구분된 선호 공관(온탕)과 험지 공관(냉탕)을 번갈아가며 근무하게 돼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 등 생활여건이 좋은 가급 공관에서 근무하면, 다음에는 비선호 지역인 라급으로 가는 식이죠.
하지만 최근 외교부는 '나급'인 중국에 한해서만 같은 국가 내 다른 공관으로 이동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허용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나급 공관인 중국에서 근무했다면 다음에는 다·라급 공관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다만 외교부는 "순환근무 원칙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관리자 역량을 쌓게 하기 위한 것인 만큼 향후 경력이 제한될 가능성은 있다"고 여지를 뒀습니다.
최근 한중관계 훈풍... 중국 인기 다시 높아질까
조태열(왼쪽)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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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은 외교가에서 '뜨는' 지역이었습니다. 2000년대 말~2010년대 초, 관가에서는 "중국 공관이 워싱턴·유엔 못지않게 인기"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공관의 인기가 떨어진 것의 '반사 이익' 측면도 있지만, 세계 패권을 다툴 정도로 중국의 위상이 커진 것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한한령(한류제한령)으로 꺾인 중국 선호도는 2020년 코로나19 발발로 이후 3년간 봉쇄기간을 거치면서 바닥을 쳤습니다. 결국 외교관들의 중국에 대한 호불호는 '고정값'이 아닌 국제 정세 등 여러 조건과 맞물려 돌아간 '변수'인 셈입니다.
그나마 한동안 살얼음 같았던 한중관계에 최근 훈풍이 불고 있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내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2014년 7월 이후 11년 만입니다. 1992년 공식 수교 이후 대중 외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처럼, 통상 관계가 좋아질수록 해당 국가에 대한 선호와 인력 충원은 늘기 마련입니다. 올해 들어 한중 양국은 장관회담만 세 차례 갖는 등 고위급 대화에서부터 민간 협력까지 여러 채널에서 대화를 속속 재개하고 있습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취임 초부터 한중 관계의 '지속가능한 질적 성장'을 강조해왔는데요. 그 든든한 기반이 되어줄 '대중 외교' 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할 묘책을, 외교부는 찾아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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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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