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일 만에 국가기관 책임 일부 인정
국민보호 의무 있는 경찰만 유죄
구청장은 직접 책임 없다고 판단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9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관련 1심 선고에서 금고 3년 형을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는 지난달 30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서장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습니다. 박 구청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구형량은 모두 7년이었습니다. 참사 당일 당직 근무했던 용산서 112치안종합상황실 송병주 전 실장과 박인혁 전 상황3팀장에게는 각각 금고 2년,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유승재 전 부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3명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유·무죄가 갈린 것은 주요 혐의인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직접 책임 소재’ 여부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경찰에만 사전 대응, 사고 임박, 사고 이후 단계 모두 과실이 있다고 봤습니다. 경찰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의무가 적시된 반면, 지방자치단체에 적용되는 재난안전법 등에는 압사사고 등이 재난으로 분류돼 있지 않은 점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2014년 세월호 이후 우리나라 최대 참사이자 삼풍백화점 이후 서울 도심 최대 인명사고”라면서 “이태원 참사는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경찰에게는 축제 혼잡 상황에 대비한 치안 유지라는 구체적인 임무가 부여된다”며 “정보보고와 용산서의 과거 핼러윈 치안대책, 사고 전날 인파 유입상황, 지리적 특성을 종합하면 경사진 좁은 골목에 보행자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어 “(이 전 서장은) 인파 집중을 예방 및 통제, 관리하는 별도 경비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정보 수집이 필요했음에도 단 한 명의 정보관도 배치하지 않았다”면서 “업무상 과살이 성립된다고 봤다. 다만 기동대를 투입했어야 할 주의 의무는 과실로 보기 어렵다며 범죄사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9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1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
반면에 박 구청장 등에 대해서는 “당시 재난안전법령에는 다중군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 유형으로 분리돼 있지 않았고,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2022년 수립 지침에도 이러한 내용은 없었다”며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해선 별도 안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어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용산구의 재난 대응 체계가 다른 자치구에 비해 특별히 부족하지 않은 점도 고려됐습니다. 또 용산서에서 이미 200명 이상 이태원에 배치해 질서 유지에 집중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상황이라 협조요청을 따로 하지 않은 점, 구청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 외주업체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주체가 용산서에 파견된 경찰관이라는 점도 무죄 판결 근거가 됐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이번 판결에 불판을 터뜨렸습니다. 일부는 법정에서 오열하거나 법원을 떠나는 박 구청장의 차량을 가로막기도 했습니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장은 “159명이 하루 아침에 목숨을 잃었는데 어떻게 구청장이 무죄가 나올 수 있냐”며 “정의를 위해 우리는 다시 싸워 반드시 박 구청장을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번 판결과 관련해서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도 재난·안전관리기본법상 ‘재난 관리 책임 기관’에 해당하는데도, 사고의 책임을 경찰에게만 묻는 것이 가혹하다는 반응입니다. 온라인 직장 커뮤니티 등에서는 1심 판결을 둘러싸고 “그간 경찰관 직무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었는데 책임을 지울 수 있는 해석이 나왔다”는 이야기부터 “소방·구청은 다 빠져나가고 경찰만 독박이고, 앞으로 경찰 책임이라는 선례까지 생겼으니 답이 없다”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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