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은 후보 시절 “낙하산 인사를 뿌리 뽑겠다”고 했다가 당선되고 나면 캠프 출신 인사 등에게 공공기관장이나 감사 자리를 나눠줘 왔다.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2000여 개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취급했다. 유능한 외부 인사라면 기용할 수 있지만 부적격 인사들이 정권 실세들에게 줄을 대 이런 자리를 꿰차면 세금 낭비는 물론이고 기관의 역량을 떨어뜨려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노무현 정부 때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임원 공모 절차가 명시되긴 했지만 이후 역대 정권을 거치며 ‘무늬만 공모제’로 전락해 인사의 책임소재만 희석시켰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기관장 자격은 ‘업무 관련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 등으로 기준이 모호하고, 감사의 경우 공인회계사·변호사 자격을 가졌거나 관련 업무 3년 이상 종사자로 제한했으나 202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정당인에게도 자격을 부여해 이마저 무력화됐다.
국회는 낙하산 인사에 대한 국민적 비판에 떠밀려 ‘낙하산 방지법’을 십수 년째 발의해 왔다.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선임 과정을 투명하게 검증하자는 법안이 19대 국회에서 18건, 20대 국회에서 8건, 지난 국회에서 1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상임위 문턱을 못 넘고 폐기됐다. 의원들은 야당일 땐 ‘낙하산을 막자’며 이런 개정안과 함께 인사백서 발간, 조사위원회 설치 등을 요란스레 추진하다가 전리품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여당이 되면 슬쩍 태도를 바꾸는 행태를 반복해 왔다. 야당 시절 낙하산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던 국회의원이 몇 년간 야인으로 지내다 현 정부에서 공기업 사장이 된 사례도 있다. 정치권이 공공기관 고위직을 정치 백수들의 먹잇감으로 전락시키는 구태를 더는 놔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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