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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걷고 싶은 길] 원적외선과 피톤치드 가득한 기찬묏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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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절경 아래 둘레길

연합뉴스

기찬묏길이 조성된 월출산과 산 아래 시가지[사진/백승렬 기자]



(영암=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월출산에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편안하게 몸을 맡기고 터벅터벅 걷다 보면 월출산 정기로 온몸이 채워지는 둘레길이 있다.

◇ 기(氣)를 채우는 웰빙 산책로

이 길은 기찬묏길로 명명된 호젓한 산길이자 오솔길이다. 평지 구간이 대부분이어서 걷기 쉬우면서도 월출산의 숲, 바위, 물의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마을 옆을 지나고, 짧지만 아스팔트 구간도 나타난다.

월출산에는 맥반석이 많다.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와 맥반석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은 신체의 상처와 염증을 치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웰빙 산책로인 기찬묏길은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만큼이나 주목받는다.

월출산을 사랑하지만 오르기는 힘에 부치는 주민과 전국의 탐방객을 위해 영암군은 이 둘레길을 조성했다.

천황봉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기가 세기로 이름난 월출산을 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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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월출산[사진/백승렬 기자]



둘레길은 천황사야영장에서 기체육공원까지 약 4.5km인 생태(자연)의 길, 기체육공원에서 기찬랜드까지 2.0km인 힐링의 길, 기찬랜드에서 도갑사까지 6.5km인 배움의 길, 도갑사에서 왕인박사 유적지까지 2.0km인 왕인의 길로 구성된다.

총거리는 15∼16㎞이다. 월출산 기슭의 큰 관광지인 기찬랜드를 기점으로 동쪽에 있는 천황사 쪽으로 산책하거나, 서쪽에 있는 왕인박사 유적지 쪽으로 걸으면 2∼3시간 동안 6∼8㎞를 걸을 수 있다.

기찬랜드에서 시작해 힐링의 길, 생태의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월출산 탐방로 입구인 천황사야영장에 닿는다.

야영장에서 올려다보는 월출산의 절경은 걷기의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는 감동을 안긴다.

생태(자연)의 길과 힐링의 길을 걸으며 산의 기상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힐링의 길과 생태의 길 구간에서는 국민여가캠핑장, 맨발산책로, 기체육공원, 솔바람숲, 탑동약수터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길 위에서 영암 군민뿐 아니라 전국에 찾아온 탐방객들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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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찬묏길 소나무 숲[사진/백승렬 기자]



◇ 굽었던 허리를 펴게 만든 맨발산책로

"조금만 걸어도 많이 운동한 것처럼 몸이 가벼워져요" "지친 발이 시원해져요".

맨발산책로에서 마주친 산보객들이 전한 맨발 걷기의 효능이다.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맨발의 여성은 역시 맨발로 같이 걷던 70대 할머니를 가리키며 "이분은 이곳에서 맨발 걷기 하신 후 굽었던 허리가 펴졌어요"라고 전했다.

힐링의 길 구간에는 약 700m의 황토 맨발산책로가 조성돼 있었다.

황토는 입자가 고왔고, 발걸음에 많이 다져져서인지 길은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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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찬묏길 맨발걷기[사진/백승렬 기자]


산책객 중에는 멀리서 여행 온 듯 즐거움에 들뜬 무리도 있었고 조용히 혼자 걷는 젊은 여성도 눈에 띄었다.

안내판에는 소화 기능, 면역, 혈액순환, 뇌 건강 향상이 맨발 걷기의 효과로 열거돼 있다.

비 온 뒤에는 황토가 마를 때까지 산책로를 쉬게 하고, 발에 상처가 있을 때는 걷기를 자제하며, 맨발로 걸을 때는 파상풍 예방 주사를 미리 맞을 것을 권고한 조언도 안내판 설명에 곁들여져 있었다.

◇ 기(氣) 테마파크와 문화 시설들

지상의 기를 모아 하늘로 솟구치는 형상의 월출산 정기를 주제로 한 공원이자,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종합관광지가 기찬랜드이다.

월출산 아래 용추골에 자리 잡고 있다. 천황봉에서 발원해 맥반석으로 이루어진 계곡을 따라 내려온 물을 수원으로 하는 천연 자연풀장은 기찬랜드의 큰 자랑이다.

여름이 끝났으므로 자연풀장은 운영되지 않고 있었지만, 한여름에는 피서객이 몰린다.

사방댐에 모아 사용하는 천연수는 수질이 좋고, 미네랄이 풍부해 피부에도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피서철에는 입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용자가 많다.

가야금산조기념관, 한국트로트가요센터, 조훈현 바둑기념관, 곤충박물관도 기찬랜드 안에 있다.

안락하고 고즈넉한 영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한옥으로 지어진 게스트하우스인 기찬재도 여행객의 호평을 받는다.

가야금산조기념관과 한국트로트가요센터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시관이었다.

가야금산조기념관은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로, 영암 출신인 김창조(1865~1919)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었다. 한국 전통 음악을 보존, 전수, 연주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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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조 선생 흉상[사진/백승렬 기자]




유구한 역사를 지닌 가야금 연주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해놓은 국내 유일의 가야금 기념관이다.

실내 공연장은 가야금 연주에 적합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앉아서 공연하는 가야금 연주자가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눈높이를 맞출 수 있도록 객석의 높이가 여느 공연장에 비해 낮은 게 인상적이었다.

트로트 음악의 부흥을 위해 개관한 트로트가요센터 역시 트로트를 주제로 건립된 문화공간으로는 국내 최초이다.

트로트는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로 평가받는다. 트로트는 일제강점기에 엔카풍으로 시작됐으나 광복과 함께 왜색이 옅어지고 팝송, 재즈 기법이 도입되면서 대중음악 장르로 발전했다.

1층은 대중가요의 역사와 전통을 짚어볼 수 있는 한국트로트역사관, 2층은 영암의 대표 가수 하춘화의 60년 활동을 보여주는 전시실로 구성돼 있었다.

일곱 살 때 어린이 가수로는 국내 최초로 가요 앨범을 냈던 하춘화는 1991년 8천 회 공연을 수립해 당시 개인 공연 최다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선친 하종오 선생은 영암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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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트로트역사관 전시물[사진/백승렬 기자]



국내 바둑 기사 최초로 9단에 올라 '바둑 황제'로 불렸던 조훈현 역시 영암 출신이다.

현대 한국 바둑계의 정상을 차지한 인물 중에는 조훈현을 비롯해 조남철(부안), 김인(강진), 이창호(전주), 이세돌(신안) 등 호남 출신이 많다.

호남이 한국 바둑의 본향으로 일컬어지는 배경이다.

영암군은 시니어 바둑팀 창단, 바둑교실 운영, 크고 작은 국내외 바둑 대회 운영 등을 통해 한국 바둑의 메카를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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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바둑기념관 내부[사진/백승렬 기자]



이번 가을 기찬묏길에서 월출산의 정기를 체험하고, 기찬랜드에서 영암의 문화,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건강과 교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이 될 듯하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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