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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비행기를 처음 본 건 시골의 비탈진 밭에서였을 것이다. 어머니와 형들과 함께 두둑 따라 감자 캐다가 무슨 낌새가 있어 하늘을 쳐다보니 서울 쪽으로 급히 달려가는 전봇대 사이로 두더지처럼 똥구멍으로 하얀 연기를 뱉으며 ‘뱅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쳇, 저 뱅기. 저거 한번 타보는 날 있을까. 야, 뱅기 타면 출세한 것 아이가. 그렇게 깔깔깔 웃어주다가 시무룩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는 푹, 자랐다.
모처럼 비행기 타는 날. 비행기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본다. 저 날씬한 동체만큼 인간의 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드물리라. 펄펄 끓는 솥 같은 캐리어 하나씩 안고 공항에서 시끄럽던 승객들. 이제 탑승해서는 좀 조용하다. 이윽고 이륙. 아무것도 없는 공중이라고 마냥 빈 건 아니다. 벼락과 천둥이 대기하고 공중의 구름은 충분히 자갈밭이다. 울퉁불퉁 호시게 나는 뱅기. 띵띵띵, 소리 끝에 승무원의 다급한 목소리. 승객 여러분 지금 우리 비행기는 난기류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동을 삼가주시고 안전벨트를 꼭 매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공중에 적응하고 비행기 공화국의 차분한 일상이 자리 잡는다. 영화 보는 사람, 독서하는 이, 눈 감고 명상하는 분. 이윽고 조금 산만한 공기를 깨고 기내식이 나온다. 무척 간지러운 식판 앞에서 얌전한 수저질과 침 넘어가는 소리. 먹는 것이 일거에 소란을 평정한 셈이다. 식욕을 채웠으니 다시 다음 욕망이 일어선다. 한꺼번에 채웠으니 배출도 한꺼번이다. 소나기 뒤 느닷없는 개울처럼 화장실 앞에 줄이 늘어선다. 이내 전혀 다른 본능의 빈틈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면세품 안내 방송이 불룩한 욕망의 등대를 비추는 것.
이상은 고래 뱃속 같은 비행기 실내를 어설피 요약한 것이다. 비행기는 그 정도로 전모가 파악되는 문명이 아니다. 인생의 한 은유 같은 비행기. 하늘 너머로 끊임없이 떠나려는 비행기. 감자밭에서 본 뱅기도 소환해서 한 줄로 적는다면. “나, 비행기, 혼자 대기한다/ 대지에서// 비행기, 나, 천천히는 날 수가 없다/ 공중에서// 성격이 급해도 어쩔 수 없는 비행기// 이 세상 뜨고 싶어도/ 지상에 머물러야 하는 비행기// 내 잃어버린 시간들이 낳은 저 뱅기.”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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