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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원유 공급 과잉 속 내년 유가 배럴당 60달러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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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우려와 전쟁 위기 속 국제 유가 향방은



중앙일보

하현옥 논설위원


국제 유가의 방향이 완전히 안개 속이다. 중동 전쟁의 위기감이 한껏 고조되며 1일(현지시간) 유가가 급등하는 등 시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한 편에서는 산유국 간 치킨 게임이 본격화하며 약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제 유가 하락을 막으려 2년여 감산을 주도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의 시동을 걸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가 12월부터 매달 하루 평균 8만3000만 배럴을 더해 내년 12월까지 100만 배럴을 증산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26일 보도했다. FT는 “사우디가 배럴당 100달러라는 비공식적인 유가 목표치를 포기할 것”이라며 “이는 사우디가 저유가 시대를 받아들인다는 신호”라고 덧붙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배럴당 100달러’라는 국제 유가는 사우디의 재정 균형을 위해 지켜야 할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네옴시티 개발 등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 등을 위한 재정 투입과 개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면 그 정도 유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등 비OPEC 점유율 잠식에

사우디 “연말 증산”…시장 출렁

경기 침체와 수요 감소 우려로

주요 IB, 유가 전망 하향 조정해

미국 원유 재고 1년내 가장 낮아

중동전 위기감에 가격 오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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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이를 위해 사우디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를 통해 2022년 11월 이후 6차례에 걸쳐 감산을 해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고공 행진했던 국제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산유국들이 뭉친 것이다. 실제로 2022년 브렌트유 평균 가격은 8년 만에 가장 높은 배럴당 99달러를 기록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자 유가 방어를 위해 감산을 택했다.

OPEC+의 감산에도 국제 유가는 사우디의 기대만큼 뛰지 않았다. 배럴당 80달러 전후를 유지했다. 최근에는 낙폭이 더 커졌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는 지난달 10일 배럴당 65.75달러를 기록하며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유가 약세로 인해 지난 6월 OPEC 회의에서 3분기 이후 점진적이고 자발적인 감산 폐지를 발표했지만, OPEC+은 자발적 감산을 다음 달 말까지 2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유가 방어 위한 감산에도 효과는 미미

셰일 가스의 등장과 석유 탐사 및 시추 기술 발전으로 석유 시장의 지형도가 변하며 사우디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밀어붙인 감산은 사우디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감산은 유가 상승에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 최대 산유국 자리를 꿰찬 미국 등 비(非)OPEC 국가가 시장을 잠식하며 사우디의 점유율은 하락했다. 그 결과 감산을 통한 재정 확보라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OPEC+ 총 감산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하루 평균 200만 배럴의 감산 부담을 사우디가 감당하면서 국내총생산(GDP)과 석유 부문의 수입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하루 최대 1200만 배럴까지 생산할 수 있는 사우디의 일일 생산량은 최근 890만 배럴로 2011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으로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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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유가 약세에 생산량까지 줄인 탓에 수입이 줄어든 OPEC+ 회원국 내 균열도 커지고 있다. 이라크 등 일부 회원국은 감산 할당량을 넘는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아프리카 2대 산유국인 앙골라는 감산 방침에 반발하며 지난 1월 OPEC을 탈퇴했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이란은 핵 합의 이전 수출량을 대부분 회복하며 OPEC 내 감산 공백을 차지하는 모습”이라며 “재주는 사우디가 부리고 이득은 이란이 취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유가를 좌우하는 건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이다. 공급이 늘거나 수요가 줄어들면 유가는 떨어진다. 상상인증권에 따르면 1983년 이후 저유가 국면은 6차례였다. 1986년과 걸프전 이후였던 1993~94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 2015년의 저유가는 수요가 줄어드는 데도 산유국이 생산을 늘리면서 빚어졌다. 86년의 저유가 국면은 80년대 초 북해와 알래스카·멕시코 등의 유전 개발과 시장 점유율 고수를 노린 OPEC의 증산으로 전개됐다. 2015~16년 OPEC이 저금리 상황 속 셰일 원유 생산을 늘린 미국에 맞불을 놓기 위해 생산을 늘리자 유가가 자유낙하했다. 반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벌어진 저유가 국면은 강한 경기 침체로 인해 공급을 줄여도 유가가 하락한 상황이다. 수요 급감 때문이었다.

경기 침체 공포…수요 전망 낮춘 OPEC

저유가 국면의 공식을 현재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 OPEC+의 감산분을 채워왔던 비OPEC 국가의 원유 공급은 여전히 탄탄하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의 원유 생산은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2.3% 늘었던 브라질의 원유 생산량도 올해 3%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초대형 유전이 발견된 가이아나의 원유 생산도 전년보다 54% 증가한 일일 6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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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여기에 더해 시장 점유율 회복을 위해 사우디가 증산에 나서고, OPEC의 감산 되돌리기가 본격화하며 공급이 늘면 유가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영국 원유 중개회사 PVM의 애널리스트인 타마스바르가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OPEC 안팎에서 공급 전쟁이 벌어지면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로 급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산유국 간 치킨 게임이 공급 측면에서 저유가 시대를 부를 요건을 갖춘 셈이다.

수요 측면에서 저유가를 야기할 변수인 경기 둔화의 먹구름도 짙어지고 있다. 경기의 바로미터인 국제 유가는 이미 약세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침체와 미국 수요 감소 우려는 유가 하락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경기 침체 공포가 커지며 OPEC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발표한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2024년과 2025년 글로벌 원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낮췄다. OPEC조차도 9월 전망에서 올해 세계 수요 증가율을 기존 대비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OPEC이 수요 전망을 낮춘 것은 12개월 만에 처음이다.

1~8월 중국 원유 수입, 3.1% 감소

원유 수요 감소의 경고음이 가장 크게 울리는 곳은 중국이다. 지난 1~8월 중국의 원유 수입은 1년 전보다 3.1% 줄었다. 8월에는 1년 전보다 7% 감소했다. EIA는 올해 초 중국의 원유 수요가 2.1%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8월에는 이를 0.7%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의 전기차 판매 급증과 LNG 트럭 확산 등 운송 연료 부분의 에너지 전환도 원유 수요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미국 대선 이후 본격화할 미·중 무역 마찰과 대중 제재 우려까지 더해지며 중국 경제 성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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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미국의 원유 수요도 부진하다. 지난 7월 중순 이후 예년 수준을 밑돌고 있다. EIA에 따르면 올해 연간 수요 증가율(0.2%)은 전년(1.3%)보다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 고용 시장 냉각과 경기 둔화 우려 때문이다.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 보급이 는 것도 원유 수요 감소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유 소비에 있어 구조적 변화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다.

이미 주요 투자은행(IB)은 국제 유가 전망을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4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평균 75달러로 낮춘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배럴당 85달러에서 80달러로 하향 조정한 데 이어 추가로 낮춘 것이다. 씨티그룹은 원유 공급 과잉 상황 속에서 OPEC+가 더 많이 감산하지 않는다면 내년 브렌트유는 배럴당 60달러 선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란 공격에 브렌트·WTI 3.5% 상승

그러나 유가가 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당장 최근 커지는 중동의 전쟁 공포는 유가를 끌어올릴 요인이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탄도미사일 공격에 나선 1일(현지시간) 브렌트유와 WTI 가격은 전날보다 각각 3.5%씩 뛰었다. 다만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줄어든 미국 원유 재고는 유가 하락을 방어할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원유 재고는 지난 6월 중순 이후 감소세를 이어가며 지난달 중순 4억1800만 배럴로 최근 1년간 가장 낮았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과도한 유가 하락이 공급자인 미국 탐사·생산(E&P) 기업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만큼 미국 에너지부는 전략비축유 재비축을 위한 석유 매입가 하단을 배럴당 67~72달러로 설정했다”며 “지난해처럼 전략비축유 매입 단가가 국제 유가 하단을 지지할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에 이은 추가 인하 가능성이 커지며, 원유 시장에 투자 자금이 유입돼 유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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