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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불황형 경제 시작됐나…내수 곡소리[韓 경제에 드리운 R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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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조원.

지난해 부가세 체납 발생 액수로 역대 최고치다. 부가세 체납액은 2019년 9조5000억원에서 2020년(9조원)과 2021년(8조4000억원) 감소하다, 2022년 10조원에 이어 지난해 11조원대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다시 늘어난 부가세 체납액은 소상공인·자영업자가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하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기 침체를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라고 강조했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경기 침체, ‘R(Recession)’의 그림자가 이미 꽤 드리웠다. 지난해 법인·개인사업 폐업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보다 많은 99만명이었고, 이 가운데 소상공인·자영업자가 대부분인 개인사업자가 91만명을 차지했다는 점이 대표적인 단면이다. 한국도 금리를 내리면 그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겠으나 한껏 올라버린 집값 때문에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기가 만만치 않다. 내수는 물론 수출 지표마저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경기를 살릴 묘책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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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이 3개월 연속 증가했다. 은행을 포함해 저축은행 등에서 대출이 막힌 서민들이 경기 침체 장기화 영향으로 생활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약관대출을 찾고 있어서다. 올 7월 한 달간 국내 약관대출 신규 취급액은 3조9000억원대로 3개월 연속 늘었다(금융감독원 자료). 5월부터 석 달 동안 7500억원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증가폭이 더 커졌다. 올 들어 7월까지 신규 약관대출 금액은 26조원에 육박한다. 약관대출은 담보대출 중 상대적으로 금리는 높지만 간편하고 빠르게 받을 수 있어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로 꼽힌다. 불황형 대출은 보험계약대출·카드론 등 신용등급이 낮아 시중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중·저신용자가 주로 이용하는 대출을 말한다.

대한민국에 드리워진 경기 침체 그림자를 보여주는 지표는 여럿이다. 개인사업자 4명 가운데 3명꼴로 한 달 소득(종합소득세 신고분)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과세 신고분이 실제 소득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자영업자 상당수가 한계 상황에 처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22년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146만건 가운데 860만건(75%)이 월 소득 100만원(연 1200만원) 미만이었다(국세청). 이 중 소득이 전혀 없다는 ‘소득 0원’ 신고분도 94만건으로 100만건에 육박했다. 저소득 자영업자 증가는 정규직 임금근로자로 취업하기 힘든 탓에 대안이 없어 창업을 택하는 생계형 자영업자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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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내수 침체가 심하고 수출은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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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경제 기둥 수출 ‘피크아웃’ 우려

수출 텃밭 중·미·EU 경제 살얼음판

내수도 문제지만 한국 경제의 기둥인 수출에 ‘피크아웃(peak out·정점을 찍고 하락)’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점에서 더 불안하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씨티·HSBC·노무라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이 한국 수출 성장세에 대한 피크아웃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국 수출이 지난 8월까지 11개월 연속 증가했지만, 둔화가 머지않았다는 진단이다.

한국 주요 수출국인 중국과 미국, 유럽연합(EU) 등 ‘빅3’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중국 19.2%, 미국 18.8%, EU 10.1%에 달한다.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7월 청년(16~24세) 실업률은 17.1%까지 치솟았다. 경제성장률 전망도 줄곧 내림세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기는 했으나, 중국 경제가 쉽사리 살아날 것이라 예단하기 어렵다. 전격적으로 빅컷(0.5%포인트 금리 인하)을 단행한 미국 역시 ‘선제적 대응’이라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월가는 벌써부터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제조업 경기 위축에 더해 실업률 상승 등 노동 시장 냉각이 심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의 수출 증가율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 5월 51을 기록한 뒤 지난 8월 49.5까지 떨어졌다. PMI가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김우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주요 수출국이 올해 상반기 중동 사태, 미국 대선 불확실성 등에 대한 선제 대응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수입을 확대했는데 경기 둔화 우려에 따라 수입을 점차 줄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상반기 달러당 1400원대에 육박하며 수출에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 고환율 추세도 미국의 피벗(금리 인하 기조로 전환) 이후 흔들릴 수 있다. 1400원을 넘보던 최근 원달러 환율은 1328원대를 기록하며 가치가 많이 올라갔다. 2026년까지 미국이 한국보다 큰 폭으로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환율에 반영됐다.

한국이 경기 침체를 벗어나는 ‘트리거(단초)’는 10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다. 지난 8월 2%를 찍은 안정된 물가와 부진한 내수만 보자면 당장 기준금리를 낮춰도 이상하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금리 기조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며 경기 개선이 제약되고 있다”며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재차 내놨다. 미국 ‘빅컷’에 앞서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해 10대 선진국 중앙은행 중 6곳이 금리를 내렸다. 다만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가 부동산을 자극하고 가계부채를 끌어올릴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한은은 9월 26일 공개한 ‘금융 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피벗에 따른) 금융 여건 완화는 주택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누증 등의 부정적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통화 정책 기조 변화에 따른 금융 불균형 확대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거시건전성 정책을 강화하는 등 조화로운 정책 조합(policy mix)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8호 (2024.10.02~2024.10.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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