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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좋은 법 만들기 위해, 국민편익 위해 입법영향 분석 중요" ['입법 홍수의 시대'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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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주필,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을 만나다
16대 2507건→ 21대 2만5097건 발의
95%가 의원 입법… '법의 과잉' 비판도
입법지원 기관으로서 책무 갈수록 막중
국회 싱크탱크로서 절차·과정 지원 만전
국민 실생활에 도움되는 법안 공급 필요
중립성·전문성 갖고 입법의 과학화 추진
법 잘 지킨 사람이 잘 사는 사회 만들 것
fn 입법제안대회는 소통 위한 중요 채널


여야 의원 입법은 '국민 삶의 질 향상'이 최종 목표다. 다만 입법안은 국민 실생활 편의성 증대라는 선의도 있지만 관련 업계에 대한 '규제 양산'이라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4년마다 교체되는 의회 권력 기간에 의원들은 경쟁적으로 입법안을 쏟아낸다. 하지만 아무리 민생법안이라도 여야 간 당리당략에 의한 정쟁 등으로 대치정국이 장기화되면 4년 내 처리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되기 일쑤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의원들의 법안 발의 요구가 올 때마다 그 법안이 시행될 경우 국민경제나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하는 시스템으로 전환을 준비 중이다. 미리 법안에 대한 입법 영향을 정밀 분석함으로써 향후 본격 시행 시 '입법적 선의'(善意)를 최대한 적용시키기 위함이다.

파이낸셜뉴스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왼쪽)과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파이낸셜뉴스 빌딩에서 주요 입법 현안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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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16대 국회에서 2507건에 불과했던 법률안 발의건수는 제18대 1만건, 제20대 땐 2만건을 돌파했다. 제21대 국회에선 총 2만5097건의 법률안이 발의되는 등 회기마다 발의건수를 경신하고 있다. 국회 발의 법안 중 95%가량이 의원 입법으로 추진되고 있어 갈수록 국회입법조사처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지난달 30일 박상철 국회 입법조사처장과 인터뷰를 하고 입법조사처의 역할과 기능 확대, 바람직한 입법 및 개헌 전망 등을 들어봤다. 지난해 취임한 박 처장은 '입법의 과학화'라는 구호와 함께 추후 있을 개헌 논의의 밑바탕을 입법조사처가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ㅡ입법조사처 설립 당시 미국 의회조사국(CRS)을 표방했다. 설립 취지와 목적은.

▲2007년 입법조사처가 만들어질 때 이 CRS를 롤모델로 삼았다. 미국의 CRS는 많은 계층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법을 만들 때는 과학적인 분석과 정교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곳이 입법조사처다. 현재 정부 입법의 비중이 5%, 의원 입법이 95% 정도다. 국회에서 대부분의 법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절차와 과정을 철저히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법 지원 외에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시행령의 방향과 문제점 등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국회의 3대 의무는 입법·예산·국정감사라고 생각한다. 국정감사에선 법의 문제점을 지적받거나, 각종 사회 분야에서 왜곡된 입법을 발굴할 수 있기 때문에 입법 지원기관으로서의 책무도 막중하다.

ㅡ의원 입법안 발의 문답 요청건수가 늘고 있는데.

▲입법안 발의 문답 요청건수가 연간 5000건에 육박한다. 의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법을 만들 때 입법조사처와 함께 공청회나 세미나를 하면 해당 입법에 대한 공신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간담회도 1년에 300회가량 한다. 다만 일각에선 '법의 과잉'이라는 비판도 있다. 공천을 받기 위한 '보여주기식' 입법이라는 비판이다. 하지만 22대 국회 초기를 보면 실제 민생 현장에서 입법 요구가 굉장히 많다. 오히려 입법 수요는 많은데 국회에서 그만큼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과잉·졸속 법안이 아닌 국민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법안의 공급이 필요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조사처의 역할도 중요하다.

ㅡ입법조사처가 추진 중인 입법영향 분석이 되레 입법에 장애물이 된다는 우려가 있다.

▲입법영향 분석이 필요한 이유는 의원 입법 비중이 95%를 넘어섰고, 과정을 건너뛰다 보면 법이 너무 쉽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잉·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법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기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법이 나오기 전까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기본법을 만들 땐 규제 중심의 '유럽식'과 진흥 위주의 '미국식'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둘지에 따라 입법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또한 찬반이 양립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편익을 위해서 입법을 해야 한다면 객관적인 수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예컨대 층간소음을 규제한다면 건축회사 입장에선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편익을 위해서 입법해야 한다는 것을 객관적인 수치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자료를 두고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 입법 절차가 까다로워지는 데 부담을 느끼는 의원들도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그 법대로 살면 좋겠다는 확신을 가질 정도의 입법이라면 이런 절차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여야 모두 입법안을 분석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연내에는 도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ㅡ정치적 중립성·전문성 확보 방안은.

▲가장 고민스럽고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탈원전, 방송통신위원회 자격 문제 등 여야가 충돌하는 법안들이 많다. 이처럼 여야가 부딪치는 법안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문의가 입법조사처로 들어온다. 입법조사처가 유권해석 기관은 아니다. 그러나 그 해석을 해줄 의무가 있다. 답신을 비공개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받은 의원들이 자기한테 유리하면 언론에 흘리기도 한다. 어떤 때는 국민의힘 쪽 의견을 받아주는 것처럼 나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더불어민주당 의견을 받는 것처럼 나오기도 한다. 입법조사처는 중립성과 전문성이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그 둘 중에 하나를 먼저 택하라면 나는 중립성보다 전문성이다. 여야, 보수와 진보를 떠나 조사처가 정확한 과학적 근거와 외국 사례 등을 중심으로 소신껏 조사하고 답변하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ㅡ헌법학자 출신으로 합리적인 개헌 방향은.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명을 다했다'는 이야기는 정권마다 계속 나왔다. 사람의 실패라기보다도 제도의 실패다. 그래서 4년 중임제는 다수 의견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외에도 요즘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지금 헌법 체제로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헌법에 여러 기본권 조항이 들어가야 될 것이다. 여야,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두 다 개헌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헌법만큼은 국민 동의를 받게 돼 있다. 여야가 합의를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헌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약 권력구조를 당장 현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바꾼다고 하면 지금 대통령뿐 아니라 미래 권력도 불만일 것이다. 그러니까 당초 느긋하게 2032년부터 시행해 지금 대통령과 다음 대권을 노리는 사람한테는 아무 지장 없도록 하는 방법 등을 써서 최소한의 합의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헌법 개정 절차법 발의, 개헌특위 등이 필요한데 이 또한 여야의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일각에서 나온 '원포인트 개헌'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문제는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조사처는 공론화 작업을 많이 할 계획이다.

ㅡ과거 '양보와 타협을 통한 생산적 정치'가 사라지고 대결정치만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각자의 진영의 가치와 논리를 주장하고 압박하다 보면 실제 이뤄지는 일이 없다. 통합이라는 것은 토론을 통해 이뤄진다. 국회야말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같이 토론을 해줘야 하는데 현재는 안 하고 있는 상태다. 토론이라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협업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고, 그 순간이 필요하다. 개헌 같은 큰 문제를 비롯해 사생활과 관련된 것, 노동자의 교섭권, 기업들에 대한 규제 등을 법을 만드는 현장에서 토론을 한다면 통합이 올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행정부에 대한 잦은 탄핵 등을 보면 권력의 갈등 정도가 아니라 충돌 수준이라고 본다. 이것을 어떻게 헌법적으로 해결하겠느냐고 고민해 보면 또 개헌 문제가 나오게 된다. 그래서 이 또한 여야 관계자들과 함께 계속 논의를 하려고 한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개헌에 실마리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진지하고 중요한 문제이기에 입법조사처가 이 부분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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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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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취임 2년차를 맞아 향후 추진하고 싶은 과제는.

▲취임하면서 '입법의 과학화를 입법조사처와 함께'라는 구호를 만들었다. 입법의 과학화를 해야 한다. 법을 만들 때 정교하게 만들어서 법을 잘 지킨 사람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입법 내용 분석의 제도화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시범사업을 거쳐 현재 메인 사업을 하고 있어서 조사처 전 직원들이 조사관들이 입법 분석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까지 왔다. 이 과정에서 서로 소통하고 합의하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제가 와서 일을 많이 했다기보다 그동안 입법조사처가 일을 많이 했더라.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약했다. 그중 하나가 언론과의 소통이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분기별로 언론에 많이 노출된 보고서를 쓴 직원에게 상을 주는 시스템 등을 도입했다. 내·외부 소통에 방점을 두려고 한다.

ㅡ파이낸셜뉴스와 공동주최 중인 '입법 및 정책 제안대회'의 최종 목표는 국민 삶의 질 제고인데.

▲각계각층이 하소연할 수 있는 통로는 입법 청원, 국회의원 만남 등이 있지만 일반 국민 체감상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티타임 때 만난 운송업체 관계자들에게도 입법 정책 제안대회를 소개했는데, 이미 이분들도 알고 있었다. 실제 제안대회에서 뽑힌 수상작들이 법안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몇 건 있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한 거다. 법의 새로운 수요를 발견한 것이다. 입법 정책 제안대회가 국민의 입법 의견을 이야기하는 굉장히 중요한 채널이 됐으면 좋겠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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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yuk@fnnews.com 김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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