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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대입 개혁 위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허무맹랑하지 않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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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그래픽 장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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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호 | 변호사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이가 몇 달 전 학교에 있는 정글짐에서 떨어졌다. 팔목이 부러져 수술까지 하느라 2주 만에 학교에 다시 가게 된 날, 나는 아이가 걱정되어서 이른 퇴근을 하고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저 멀리 팔에 깁스를 한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웃었다. 그때 체육관 쪽에서 교실로 향하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10명도 넘는 친구들이 순식간에 아이를 둘러싸고는 많이 아팠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안부를 묻고 위로도 하는 게 아닌가? 친구들은 교실로 올라가는 것도 잊은 채 한참 아이와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교실로 가야 한다고 하자 아이와 작별인사를 하고 교실로 올라갔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1학년이 세 반뿐인 데다 ‘아침 돌봄’이나 ‘방과 후 교실’을 같이 하다 보니 다른 반 아이들과도 친하다고 했다. 학교폭력이나 교권 침해 등의 사건을 통해 극단적인 갈등 상황만 접하던 나는 오랜만에 등교한 아이를 환대해 준 친구들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2019년 출제된 수능의 국어, 수학 몇 문제가 고교 교과과정 밖에서 출제되었다고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나는 원고들(당시 고3 학생과 학부모)을 대리하였다. 당시 원고로 이름을 올렸던 고3 학생이 쓴 진술서를 나는 잊지 못한다. 줄곧 친하게 지내며 우정을 키워왔던 친구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서로의 성취나 발전을 축하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 한편에서 실패를 은근히 바라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고 있는 대입을 목표로 같은 반 동무들이 경쟁 상대가 될 수밖에 없는 대입제도 속에서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졸업 후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협동, 조율, 배려, 지지, 공감 등의 덕목은 한참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한때 바람직한 교육제도로 소개가 많이 되었던 핀란드를 비롯해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인기학과가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고 대입 절차에 내신이 반영이 아예 안 되거나 되더라도 한국처럼 객관식 시험을 통해 동급생과 상대평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대학입시에서 수험생 본인의 실력 향상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 평준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대학입시를 개혁하는 데 있어 선행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닌 것이다. 지방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제나, 사립대학으로부터 학생 선발권을 양보받는 과정에서 엄청난 국가 재정의 투입이 예상되더라도, 오히려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인한 대학 통폐합이 현실이 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학의 평준화에 대한 논의는 더욱 필요해 보인다.



얼마 전 청소년들이 청구인이 되어 제기한 이른바 ‘기후소송’에서, 헌법재판소가 2030년 이후 감축할 탄소배출량을 정하지 아니한 부작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들 청구인(대리인단)은 기후소송의 본질을 “부모들을 향한 아들, 딸들의 호소와 절규”라고 정의하였다. 실제 청구인들과 대리인들은 구체적인 법적 주장에 앞서 준비서면을 통해 “탄소배출 감소는 재판관들의 손자 손녀들, 우리 미래 세대들의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던가?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이제는 자기 살을 깎아 먹는 기존 입시경쟁에서 몇 가지 비중을 조정하는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쟁적 입시제도 근본을 수정하는 과감한 결단과 사회적 합의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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