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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진료실 풍경]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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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이투데이

오래전 9월 말께에 감곡에 갔다가 맛있는 복숭아를 파는 농장을 알게 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친구들과 직접 농장에 가서 상품가치가 없는 것은 얻어먹고 단체로 복숭아를 사가지고 오기를 몇 년째, 올해도 갈 계획을 세웠다. 충주 종댕이길 트레킹을 하고 농장엘 들른다는 일정이었다.

한데 늦복숭아가 죄다 병이 나 오면 안 된다는 전화가 왔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봉지를 열어보면 애벌레가 가득하다고 한다. 그럼 근처 다른 농장이라도 소개해 달라고 하니 다 마찬가지란다. 작년에는 비가 많이 와서, 올해는 병충해로 늦복숭아 농사를 망쳤다며 힘들어 하셨다. 금 사과 금 배추, 그리고 반복되는 복숭아 피해, 갈수록 더 자주 농약을 뿌려야 한다며 한해 농약 값이 3000만 원이라 했다. 놀랍다. 왜일까? 농장주는 기후 변화가 원인이라 했다.

지난 6월부터 9월 말인 지금까지 여름에 잘 생기는 수족구병이 계속 유행하고 있다. 올핸 특히나 유난하다. 편도선이 빨갛게 부어 생기는 열감기도 많다. 치료를 하면 대략 3~4일 만에 좋아져야 하는데 지금은 약을 먹으면 열이 떨어졌다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고, 고열이 보통 1주일 이상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코로나도 심심찮게 보이고 작년에 이어 여름인데도 독감환자가 있다.

백일해는 또 어떤가? 사실 백일해는 40년 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시절 교수님의 녹음테이프를 통해서 백일해 기침이 이런 것이라고만 배웠을 뿐, 직접 환자를 접하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왜 이런가? 모질어진 날씨만큼이나 병원균도 모질어진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들은 부모대로 힘들어 한다. 과거에는 소아청소년과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어떻게 하면 질병이 빨리 치료될까만을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거기에 더해 이 아이들이 장차 컸을 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 든다.

나만의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라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기후 변화와 그에 따라 점점 심해지는 병충해와 질병들, 환경오염, 사회경제적인 갈등들. 현실은 이렇게 엄해져 가고, 각국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이웃을 거리낌 없이 공격할 정도로 격해지고 있는데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키워야 할 소는 안 키우고 대체 어디에 매몰돼 있는 걸까.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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