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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유효상 칼럼] 왜 비만치료제가 게임체인저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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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금년 초 일라이 릴리(Eli Lilly)는 존슨앤존슨을 제치고 글로벌 제약, 바이오 분야 시가총액 1위에 올랐으며, 전 세계 시가총액 순위 10위를 기록했다. 9월 30일 현재 7903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기록하고 있는 릴리는 작년에만 주가가 무려 60% 상승했으며, 금년에도 현재까지 43%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일라이 릴리가 미국 회사 중 애플, MS,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메타, 테슬라 등 7대 빅테크기업인 '매그니피센트 7'을 제외하고, 최초로 '1조 달러'를 넘어서는 회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도 작년 초부터 9월 말 현재까지 80% 이상 주가가 오르면서, 5387억 달러의 시가총액으로,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선 데 이어 유럽 기업 시가총액 1위, 전 세계 제약, 바이오 분야 시가총액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공장을 연중무휴로 하루 24시간 풀가동하는 데도 공급량이 부족해지자 "수요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TV 광고를 중단하기도 했다.

반면에 오랫동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존슨앤존슨은 작년에 18% 넘게 주가가 떨어지면서 3위로 추락했다. 시가총액도 3885억 달러로 1, 2위와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엄청난 수혜를 입었던 모더나의 시가총액은 전년보다 45%나 하락했으며, 화이자 역시 43% 이상 주저앉았다.

글로벌 제약사 시가총액 1, 2위를 차지하며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모두 'GLP-1'이라는 물질 기반의 비만치료제를 앞세워 급성장했다. 비만치료제 시장은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GLP-1이 비만치료에 사용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노보 노디스크가 최초의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삭센다'로 FDA 승인을 받았고, 지난 2021년에는 '위고비'를 출시하면서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한 일라이 릴리도 지난해 위고비보다 성능이 향상된 '젭바운드'를 선보이며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GLP-1은 음식 섭취 시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일종으로 인슐린의 합성과 분비의 증가, 글루카곤 분비 억제, 소화 흡수 지연의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GLP-1은 당뇨병 치료제로 처음 개발됐으나, 현재는 비만, 지방간, 퇴행성 뇌질환,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질병에 그 활용 범위가 확대된 상황이다.

하루에 한두 번 맞는 이전 비만치료제에 비해 일주일에 한 번 주사로 3배 이상의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체중이 줄어듦과 동시에 신부전 증상이 완화되고 심장마비 및 뇌졸중 위험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뉴잉글랜드의학저널(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되었으며, 비만치료제가 건강을 개선해 주는 효과까지 있음을 뜻한다.

사이언스는 놀라운 체중 감량 및 건강 개선 효과를 인정해 GLP-1 기반의 비만치료제를 2023년 '올해의 성과'(Breakthrough of The Year)'로 선정했다. 미국 MIT가 발행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도 '2024년 10대 혁신 기술'에 비만치료제를 포함시켰다. 또한 사이언스는 '비만이 임자를 만났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비만 약물치료는 체중 감량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비만은 약한 의지력의 결과라는 잘못된 믿음이 얽힌 안타까운 과거에서 시작됐다"며 "새로운 종류의 약물 치료법이 등장해 유망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제품을 사용해서 효과를 본 많은 셀럽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틱톡(TikTok) 등 소셜미디어로 공유하기도 했다.

최근 발표된 일라이 릴리의 2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은 113억 28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6% 늘었으며, 순이익은 68% 이상 급증한 29억 6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월스트리트의 전망을 넘어선 성적이다. 비만치료제인 마운자로의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났으며, 작년 말 출시된 신규 비만치료제인 젭바운드도 예상을 깨고 엄청난 매출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2분기 영업이익은 38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했으나, 비만치료제 위고비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55%라는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월가의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비만치료제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최대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말 전에 양사는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어, 양사의 높은 성장률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제약, 바이오 업종의 연평균 성장률은 10% 미만으로 예상되지만, 비만치료제는 이보다 5배 이상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했다. 또한 비만치료제 시장은 연평균 50%씩 성장해서 2030년에는 130조 원 규모가 될 것이며, 결국 의약품 시장의 강력한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2030년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의 점유율을 85%로 내다봤다.

한편 세계비만재단(WBF) 아틀라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70%, 유럽 성인의 50% 이상이 과체중 상태이며, 전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이 비만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비만은 질병'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약으로 비만을 치료하겠다는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비만치료제의 잠재적 시장가치와 파급 효과가 그만큼 엄청나다는 걸 뜻한다.

코로나19 백신 이후 세계 제약업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코 비만치료제다. 선풍적인 인기 속에 품귀 현상까지 빚자, 굴지의 제약 대기업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른 비만치료제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기적의 비만약'으로 불리며 현재 전 세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는 주 1회 투약 방식이지만, 암젠은 월 1회만 주사하는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화이자는 주사약이 아닌 먹는 약으로 승부를 벼르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로슈, 머크 등도 뛰어들었으며, 국내에서도 한미약품, 동아에스티, 일동제약, 대웅제약 등 많은 회사들이 비만치료제 시장에 참전하고 있다.

1876년 남북전쟁 당시 북군 대령 출신의 화학자가 "붉은 릴리 마크가 있다면 틀림없이 좋은 약"이라는 슬로건 아래 만든 일라이 릴리는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비만치료제가 148년 전통의 제약 공룡을 당당히 세계 1등 자리에 올려놓으며 새로운 여정으로 이끌고 있다.

전례 없는 성공의 순간에도 일라이 릴리의 CEO인 데이브 릭스는 "후발 주자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상황이라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우리도 평범해진다"고 말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평범함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할 것"라고 하였다. 1등 기업에 안주하지 않고 조금도 방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풍에 대해 미국 소크연구소 사치다난다 판다 박사는 "비만 치료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예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상당하다"면서 지나친 기대감을 경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가 출시될 예정인 가운데, 비만 치료뿐 아니라 노화까지 늦춘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예약 전쟁까지 빚어지는 만큼, K-비만치료제도 세계 시장에서 품귀현상이 벌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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