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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르포] 공자는 중국의 새로운 판다가 될 수 있을까…국제공자문화제에서 본 ‘공자 세계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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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8일 공자 탄생 기념 제사가 열린 공묘(공자사당) 대성전으로 향하는 문. 취푸|박은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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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탄생 2575주년을 맞은 올해 중국국제공자문화제가 지난 27일 개막했다. 중국 정부는 공자를 중국인의 스승으로 강조하며 유교문화 부흥에 힘쓰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일대일로 사업과 결합해 공자를 통한 ‘중국 정신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지닝시 취푸에서는 매년 9월 공자 탄신일(9월28일)을 기념하는 국제공자문화제가 열린다. 올해 40주년을 맞은 문화제는 ‘공자와의 대화: 문명 간 상호 학습’을 주제로 열렸다. 행사 기간 내내 ‘세계의 공자’를 강조했다.

린우 산둥성 당 위원회 서기는 이날 개막식에서 “나라마다 독보적인 특수한 전통문화를 갖고 있으며 우수한 전통문화가 번성해야 세계 문명도 영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며 “공자 사상은 중국식 현대화의 바탕이 됐으며 교류 속에 발전해 인류문명에 기여한다”고 국제 문화제를 연 취지를 설명했다.

개막식 현장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권이라 분류되는 한국, 일본, 베트남 외에도 마다가스카르, 몰디브, 아르메니아, 말레이시아, 팔레스타인이 참석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5대륙 35개국 370명이 초청됐다.

문화제에선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음악 연주와 중국 전통무용, 젊은이들이 인공지능(AI) 시대 공자에게 배움을 청하는 내용을 담은 짤막한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에서 공자는 젊은이들에게 부지런히 학습할 것을 당부했다. 모든 공연마다 무대 스크린으로 선보인 화려한 그래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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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니산세게유학센터에서 열린 2024 중국국제공제문화제 개막식 한 장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문자가 상승하는 장면을 구현한 그래픽 영상이 나오고 있다. 취푸|박은하 특파원


해외에서 온 많은 참가자들은 공자와 유교 사상에서 교육의 가치를 주목했다. 쥐스탱 투케 마다가스카르 국회의장은 “공자는 중국의 사상이지만 보편성이 있다”며 “내가 이해하는 공자사상의 핵심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교육의 사회적 역할이다. 교육을 통한 지적 능력 향상이 사회 평화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이탈리아, 이집트 등 유교와 농촌교육 보급에 애쓴 사람들이 공자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중국 전통복장을 입고 상을 받았다.

문화제의 하이라이트는 28일 오전 열리는 공자 탄생 기념 제사이다. 산둥망 등에 따르면 취푸 공묘 대성전을 중심으로 전국 60곳에서 동시 제사가 열리며 생중계됐다. 당의 선전을 책임지는 리슈레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선전부 부장이 취푸 공묘 제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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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산둥성 지닝시 취푸 공묘에서 열린 공자 탄생 기념 제례 참여자들이 깃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취푸|박은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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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복장을 입은 무용수 256명이 4개의 팀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전통 음악에 맞춰 군무를 선보였다. 양, 소, 돼지 등 공물 봉헌과 주요 인사들의 참배가 이어졌다.

산둥성에서 공자는 존경받는 인물이면서 하나의 캐릭터 상품이었다. 쓰촨성 청두 곳곳에 판다 인형과 기념품을 파는 것처럼 지닝에서는 인자하고 귀여운 할아버지 모양으로 만든 공자 인형과 노트 등을 볼 수 있었다. 공묘 인근에서 바를 운영하는 사장은 “TV생중계로 축제를 봤다”고 전했다.

공자의 이미지는 중국에서 부침을 겪었다. 1910년대 신문화운동을 주도한 신지식인들은 중국 근대화가 늦어진 이유로 유교를 지목했다. 1960~19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에 공자는 구질서의 핵심이자 노예정신을 옹호한 인물로 비판받았다. 문화대혁명 기간 홍위병들은 취푸에 있는 공자 관련 유물 8만점을 훼손했다고 전해진다.

공자는 2000년대 이후 중국인의 정신적 스승으로 부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취푸의 공자 유적지와 후손들을 방문해 공자 사상을 연구하라고 지시하면서 공자의 지위는 더욱 격상됐다. 해외 공자 보급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산둥성 정부가 주최하는 문화제도 2014년부터 대대적인 중앙정부 지원을 받으며 규모가 커졌다.

중국 전문가들은 마르크스 사상의 위기와 세계화 조류 속에서 중국 지도부가 공자 사상을 새로운 정신의 구심점으로 찾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충과 효, 조화, 질서를 강조하는 공자 사상이 문화적 보수주의에 걸맞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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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니산세계유학센터를 찾은 관광객들이 공자 동상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취푸|박은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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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닝시의 한 공무원은 “공자 사상 가운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표현을 가장 좋아한다”며 “중국의 외교정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화이부동은 조화를 이루면서도 같아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와의 외교관계에서 강조하는 원칙이다. 중국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공격적인 공자 세계화 정책은 부작용과 반감도 낳았다. 미·중 갈등과 맞물려 공자학원이 학술교류를 명목으로 해외 학계 동향을 파악, 간섭하고 해외 활동요원을 모집하는 기관으로 활용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미국 내 공자학원은 90% 가까이 퇴출됐다. 한국에서도 수십개 대학이 협력을 중단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중국 정부가 최근 새로운 공자 세계화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경남 창원에서 산둥성의 초청을 받고 온 고성배 한국차문화연합회장은 “중국 정부도 급진적인 공자 세계화 전략이 반감을 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전략을 다시 짰다”며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인성교육과 문화교류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전했다.

취푸에서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니산에 2019년 건립된 니산세계유학센터가 ‘공자 세계화 2.0‘을 추진하는 중심 기관이다. 니산 기슭은 공자의 부모가 치성 끝에 공자를 낳았다는 곳이다. 주변에는 거대한 호수를 볼 수 있는 니산 성경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에는 72m 거대 공자 동상이 있다. 센터에서는 서예 등 전통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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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산세계유학센터 건물 내부 모습. 세계 다양한 종교건축 양식을 혼합했다. 취푸|박은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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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는 중국 전통 건축물과 달랐다. 중국 전통건물, 바티칸 대성당, 러시아 정교회 성당,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동남아시아 불교 사찰 등의 세계 각지 종교시설 양식이 모두 섞여 있었다.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비슷한 벽면 구조물도 있었고 논어에 나온 공자 행적이 조각상으로 재현돼 있었다.

센터 안내원은 “‘화이부동 천하대동’의 사상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자가 다른 문명권에서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였다.

유교에 관심 있어서 참여했다는 한 한국인 대학생은 이번 축제를 두고 “기술적 면에서 더할 나위가 없다.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외국 귀빈에게 중국 전통복장을 입혀 행사에 참여시킨 것이 단적이다. 오히려 각자의 전통복장을 입고 공자를 말하는 것이 진짜 세계화 아닐까”라고 전했다.

취푸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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