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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파이터'로 변신 한 총리, 그를 '오덕수'로 부르는 이유는[정치 도·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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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임기 반환점 가까워도 존재감은 커져
최근 대정부질문 '대야 강경모드' 관심 끌어
후임 인선 어려운 국회 상황도 '중임론' 영향
내부에서도 '절대적 신뢰'... "대체자 없다"
'대권주자 부상 가능성' 조심스럽게 고개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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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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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잘못된, 오도된 통계입니다. 말씀해보세요. 어떤 통계가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엉터리라고 합니까?"
한덕수 국무총리

22대 정기국회 첫 대정부질문이 열린 지난 9일, 한덕수 국무총리 목소리가 국회 본회의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국회의원 중 목소리 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보다 크게 들릴 정도였으니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시작을 함께한 한 총리는 그간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부터 새만금 잼버리 대회 논란 등 숱한 야당 의원들 공격에도 격앙된 반응을 자제했습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도 역력했던 한 총리지만, 이번 대정부질문 기간 내내 '이제 더는 참지 않겠다'는 듯 야당 의원들의 공세를 정면으로 맞받아치기 시작했습니다.

10일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을 두고 야당 의원들로부터 '대한민국 총리가 맞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가 압권이었습니다. 한 총리는 꽉 쥔 오른 주먹을 수차례 흔들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작년에 후쿠시마 가지고 싸울 때 일본 총리라고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런 모욕을 하지 마세요!"

한 총리는 공직에 몸담은 40년간 언성을 높인 일이 정말 드물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의 '깜짝 변신' 배경과 이유를 두고 정치권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총리가 영국 국회의 '대총리 질문'을 참고해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부터 지난해까지 국회에서 '대야(對野) 파이터' 역할로 눈길을 끌었던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갑자기 달라진 한 총리 모습을 보면서 최근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별명도 등장했습니다. 바로 '오(五)덕수'입니다. 한 총리가 이대로 교체되지 않고 윤 대통령 임기 5년을 함께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입술이 부르튼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될 만큼 이미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한 총리에게는 꽤나 고약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처음 '농담 반, 진담 반' 회자되던 말이, 최근에는 점점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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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6월 12일 국회를 방문해 우원식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부르튼 입술이 눈에 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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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수' 만든 건 본인 의지 아닌 환경


한 총리 의지와는 관계가 없는 별명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한 총리는 국민의힘 참패로 끝난 지난 4·10 총선 직후 "저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윤 대통령에게 사표부터 제출했으니까요. 이후 사표 수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본인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저는 사의 표명을 했고, 대통령께서는 계속 검토 중이라 생각한다"고 일관되게 답했습니다. 한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사실 한 총리는 체력에 부쳐 그만두고 싶어도 못 그만두는 상황처럼 보인다"며 "최근 야당하고 세게 붙는 것도 저러다 '그냥 제가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귀띔했습니다.

지근거리에서 한 총리를 수행하는 측근들도 "일단 당신에게 맡겨진 일을 허투루 하는 성격이 못 되니 매사에 열심히 하는 것뿐이지, 괜히 다른 욕심 같은 걸 가질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보여준 파이터 같은 모습도 야당의 과도한 선동성 발언을 더 묵인할 수 없다는 책임 의식에서 나온 행동이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계산 같은 건 깔려있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오덕수'라는 별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요인은 뭘까요? 우선 전례를 찾기 힘든 수준의 여야 간 갈등 상황이 꼽힙니다. 최근 임명된 심우정 검찰총장을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30명의 장관급 후보자들을 국회 동의 없이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총리는 법적으로 국회 동의 없이 임명이 불가능합니다. 압도적 의석수를 가진 야당이 반대하면 새로운 총리를 임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 같은 극한 갈등 상황에 '누굴 데려다 놔도 야당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내부 절대적 신뢰도 '오덕수론(論)'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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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8일 서울 성북구 하랑푸드에서 방학중 결식아동 도시락 지원을 하기 위해 도시락을 포장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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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리가 40년 가까운 공직 생활로 쌓아올린 두터운 내부 신망도 '오덕수론(論)' 확산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관가에서는 관세청과 산업부를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수석비서관과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 장관을 지내고,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까지 이미 경험한 한 총리의 국정 현안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최대의 장점으로 꼽습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한 총리 이상으로 경제와 외교, 사회 분야까지 두루 알고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인사를 찾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이번이 두 번째 국무총리직 수행인데, 오히려 갈수록 내공이 더 늘고 있는 듯하다"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한 총리가 워낙 오랜 시간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보니 또 다른 '장수 총리'이자 '뫼비우스 총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박근혜 정부 정홍원 전 국무총리와 비교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그립'이나 존재감 측면에서 한 총리와 정 전 총리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는 공무원들의 평가입니다. 박근혜 정부 첫 국무총리인 정 전 총리는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지만, 후임자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낙마하며 2달여 만에 다시 유임되는 촌극을 빚었습니다. 이듬해 1월 이완구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총리직을 지키긴 했지만, 사실상 '후임자가 없어 유임된 인물'이라는 인식이 커, 내각 통제력이 충분치 못한 임기 절반을 보냈다는 평가입니다. 이와 비교해 한 총리는 이미 정 전 총리의 재임 기간(721일)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건재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후임 하마평... 당분간 韓 체제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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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한덕수 국무총리, 오른쪽은 정진석 비서실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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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리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그를 '오덕수'로 몰아가고 있다지만, 이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어 보입니다. 국무총리 인사는 어느 정권에서나 정국 전환용 카드로 활용됐고, 인사권자인 윤 대통령이 답답한 국정 난맥상을 풀기 위해 전향적으로 후임자 물색에 나설 가능성 역시 늘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4월 총선 참패 이후 대통령실에서는 '여야 협치' 국정기조 전환을 위해 윤 대통령이 박영선 전 의원을 후임 국무총리로 검토했다는 사실도 이미 알려진 바 있습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영수회담에서 총리 인사 문제를 놓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비공식적으로 논의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뒤, 후임 총리 하마평은 정가에서 '씻은 듯' 사라진 상태입니다. 대통령도 최근 국정브리핑에서 "당분간 한 총리를 중심으로 한 내각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며 재신임의 뜻을 공식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습니다. 한동안 '한덕수 체제'가 흔들릴 일은 없어 보입니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최근 파이터 기질이 충만해진 한 총리의 달라진 모습과 연결해 그를 차기 대선주자로 연결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각에서 대야 투쟁의 선봉장으로 나서 싸우다 당권을 거머쥐며 단숨에 '여권 잠룡' 반열까지 오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 대통령과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런 얘기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대통령의 '절대 신뢰'를 받는 한 총리가 중량급 대선주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될 가능성도 없잖다는 논리입니다. 고령인 한 총리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지만, 한 총리는 지금도 1㎞ 이상을 수영할 만큼 체력 관리에도 철저하다는 후문입니다. 과연 '오덕수'란 얘기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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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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