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사회복지기관인 사단법인 더프라미스가 27일 제주시 조천체육관에서 주최한 재난대응 훈련 중 노인 자원봉사자·구호단체 요원 등이 구호용 텐트와 종이로 만든 가구를 설치하고 있다. 제주 | 이예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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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좀 들여보내 주세요!” “제 딸 좀 찾아주세요!” “허리가 너무 아파요!”
27일 오후 1시쯤 제주시 조천읍 조천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 이재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제각각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도움을 바라며 아우성을 치자 대피소는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구호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당황해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일단 진정하세요!” 요원들은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조천체육관에서 벌어진 ‘이재민 대피 소동’은 실제는 아니었다. 훈련이었다. 재난사회복지전문기관인 사단법인 더프라미스가 제주에 ‘슈퍼 태풍’이 덮쳐 이재민 60여명이 갑자기 대피소로 몰려온 상황을 가정하고 재난에 대응하는 시뮬레이션 훈련을 한 것이다. 훈련에 참가한 노인 자원봉사자·구호단체 요원 100여명은 이재민과 구호 요원으로 역할을 나눠 재난 취약층에게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혼란 상황을 재현했다.
이번 훈련은 기후위기·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장애인·어린이 등 ‘재난 취약층’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같은 시뮬레이션 훈련은 국내에서 처음 진행됐다고 한다. 김동훈 더프라미스 상임이사는 “노인·아동·장애인 등 신체적·정신적으로 취약한 약자들이 재난 시 긴급 상황에 잘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 훈련의 목표”라고 말했다.
27일 더프라미스 주최 재난 대응 훈련 참가자들이 심정지 환자에게 CPR을 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 | 이예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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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상황도 재난 취약층이 실제 겪을 수 있는 혼란 상황으로 꾸며졌다. 지체 장애가 있는 노인 역할을 맡은 자원봉사자는 휠체어를 끌며 도움을 요청했고, 7살 여아 역할을 담당한 자원봉사자는 음식을 먹지 못해 배고픔을 호소했다.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노인 역할을 한 자원봉사자는 심리적 고통을 간곡하게 알렸다.
혼란 속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이재민들이 심정지·열사병 등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쓰러지거나 지진이 발생해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구호 요원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거나 물수건으로 열사병 환자들의 몸을 닦았다. 한쪽에선 이재민들의 인원수를 일일이 확인하며 한 명도 빠짐없이 대피시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27일 더프라미스 주최 재난 대응 훈련 참가자들이 지진 발생 대피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 | 이예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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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훈련 이후 구호 요원 대처를 평가하는 시간도 가졌다. 지체장애인 이재민 역할을 맡은 김자경씨(49)는 “휠체어 탄 이재민을 배려해 출구 쪽과 가까운 구호용 텐트에 배치해 준 것은 잘 한 점”이라며 “그러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자 구효 요원들이 휠체어를 밀치고 지나가기도 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뇌전증이 있는 치매 노인 역할을 담당한 남희라씨(60)는 “뇌전증으로 쓰러지면 기도 확보부터 해야 하는데 구호가 잘되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구호 요원 역할을 한 홍태욱씨(53)도 “사전에 역할을 나눴어도 긴급 상황이 벌어지니 일인다역을 해야 해서 당황스러웠다”며 “이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반복 훈련이 전문적으로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김 상임이사는 “실제 재난 상황에서 유연하게 위기에 대응하려면 대처에 성공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보다 실제 재난 현장처럼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대처에 실패해 보는 경험도 하면서 이를 보완할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프라미스는 이날 훈련을 바탕으로 ‘재난 약자와 동행하는 재난대응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제주 |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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