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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낯선 탐색·새로운 감각 경험이 글쓰기 근육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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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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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것 같지 않던,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여름도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사색의 계절이라는 가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가을 냄새가 나면서 신기하게도 왠지 감성이 풍부해지며 뭔가 끄적거려보고 싶은 창작 욕구가 샘솟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기분만으로 뚝딱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이 감성에 기름을 부어 시너지를 낼 뭔가가 필요합니다.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각이 서로 다른 영역을 거닐게 하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방송작가 시절, 예능 프로그램을 할 땐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큐멘터리를 할 땐 일부러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방송 하면서 물리학 전공자라는 것 역시 의외로 강점이 되기도 했고요. 지금도 머릿속이 꽉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제가 전혀 모르는 영역이나 저와 정반대에 있다고 느껴지는 분야의 책을 읽어보곤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경계에선 꽃이 핀다는 말이 있죠. 발상의 전환이 되기도 하고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가볍게 보는 책과 책상에 앉아 읽는 책, 노트를 옆에 놓고 공부하는 책, 이렇게 세 종류의 책을 병행해서 읽는 게 좋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읽으면 굳어 있던 사고를 유연하게 풀어주고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각양각색 볼펜 사용의 신선함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동기 부여를 위해 펜과 노트를 새로 장만하는 분들도 보게 되는데요, 그렇게 계속 습관을 들이면 그 펜과 노트를 마주할 때 글이 잘 써지는 효과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그 펜과 노트가 아니면 글을 쓸 수 없는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대신 각양각색의 볼펜을 여러개 준비해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혹은 그날 특별하게 다가오는 단어나 표현 등에 각각 다른 색으로 표시하면서 써보면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우뇌와 좌뇌가 모두 자극받게 되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책을 읽을 때도 이렇게 다양한 색의 펜이나 포스트잇 간지를 활용하면 정리나 구분도 잘되고 그 내용에서 더 발전된 나만의 생각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간단한 스케치나 그림 그리기를 통해서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얻게 되는 것 역시 우뇌와 좌뇌를 모두 자극한 덕분이겠죠. 종이에 손으로 쓰는 게 익숙하지 않다면 태블릿에 펜을 사용해서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손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몸으로 새로운 자극을 느끼는 것, 특히 오감에 자극을 받는 게 멈춰 있던 뇌를 움직이게 해서 창의적인 사고로 이어진다고 하니까요.



가을이라는 감성에 젖어 너무 내부로의 사색에 빠지다 보면 앞선 의욕에 머리만 더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내 안의 블랙홀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질수록 외부로 시선을 돌려보라고 합니다. 어떤 평가 없이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면 오히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설명하거나 분석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고, 인간의 마음속에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 안에 이미 자연이 있기 때문에 외부의 자연을 보면 공감하고 감흥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언젠가 봤던 김훈 작가의 인터뷰 내용인데요, 여행이 많은 사람들의 돌파구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은 외부로부터 오는 새로운 자극들로 뇌세포를 깨어나게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뇌를 멈추고 쉬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화장품 중에 다음 단계의 제품을 더 잘 흡수하도록 하는 기능을 지닌 부스터라는 게 있습니다. 여행도 우리의 뇌가 고기능의 인지적 활동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부스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면 그 자체로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좋은 에너지가 생기는 경험들을 해보셨을 겁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새로움의 에너지를 얻는 것도 여행이라는 부스터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경험, 특히 문화적 체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 창의력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죠.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행위가 걷는 것, 먹는 것, 수다 떠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세가지가 모두 충족되는 게 바로 여행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통해 재충전과 영감 모두를 얻어올 수 있는 이유도 행복감이 함께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제가 방송작가 지망생들을 가르칠 때 방송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팀을 나눠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연극이나 뮤지컬, 전시회, 그리고 놀이공원을 통해 구성과 포맷의 아이디어를 얻어 오라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습니다. 의외로 놀이공원에 다녀온 팀이 가장 좋은 결과물을 냈습니다. 이 배경에도 본인들이 마음껏 즐기면서 느꼈던 행복감이 있었을 겁니다.







평범한 일상을 빛나게 하는 변화





꼭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신선한 자극과 충만한 에너지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항상 지나다니던 골목길, 익숙한 풍경도 음악을 들으면서 보면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서도 보이는 모습에 변화가 생깁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말처럼 내 주변의 사람도, 풍경도 익숙함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음악 하나 추가되는 것만으로 똑같은 환경이 달라지듯 평범한 일상에도 뭔가를 가미하면 빛나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걸 글로 표현해보세요. 색깔, 형태, 움직임, 그리고 그들 간의 관계를 보이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묘사하듯 써보는 겁니다. 다양한 표현법과 어휘 사용 연습을 한다는 생각으로 관찰한 것들을 써나가다 보면 글도 마음도 풍성해지고 그 풍성함으로 다시 새로운 창작력을 얻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랑받는 창의력이란 이런 익숙한 것들을 잘 결합시켜서 새로운 걸 보여주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석 연휴에 이어 또 한번의 징검다리 연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휴식이 성장을 가져온다고 하죠. 운동도 중간에 하루 정도 쉬어줄 때 근육이 붙는다고 들었습니다. 쉴 틈 없이 가동되고 빈틈없이 가득 찬 머리에 제대로 된 휴식을 제공해줬는지, 쉰다고 하면서 에너지를 더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현대인들의 문제는 바쁘다는 것보다 바빠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채우는 것에만 익숙하고 비우는 것에는 서투른 탓일 겁니다. 이번 연휴엔 점점 짧아져만 가는 가을을 제대로 한번 만끽해보는 건 어떨까요? 한편으로는 비워내면서 한쪽은 채워지는 경험을 통해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 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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