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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갇힌 시대에 창문 내고 해체와 생성의 미학을 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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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상범, 10폭 병풍 ‘귀로’, 193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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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호수, 강, 그리고 태양은 나의 친구들이었고 (…) 나보다 구름을 더 좋아하는 이가 있을까?”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 ‘아름답고 우울한 구름’ 속 구절이다. 헤세는 자주 자연을 예찬했다. 한국화는 오래도록 주변의 산수를 담아냈다. 근대 한국화의 새 장을 연 이상범과 현대 수묵화를 이끌어 가는 권세진이 그려내는 세계가 궁금하다.





한국화, 찬란하게 발화하다



아득해졌다. 가로 4미터가 넘는 대작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다. 어느 길로 돌아가야 할까? 이상범의 ‘귀로’를 직접 대면했다. 드디어. 작년 초 서울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조선, 병풍의 나라2’ 전시였다.



‘청전양식’ 이라는 말이 익숙한가? 그러하다면 당신은 이미 한국 근현대의 산수화를 잘 알고 있다. 어려웠다. 내게는. 서화, 동양화, 한국화, 문인화, 수묵화라는 용어조차. 배우면 배울수록 그림을 보면 볼수록 헤맬 뿐이다. 같은 자리에서. 까다로운 타인이 옆에 서 있는 듯 했다. 걸작으로 칭해지는 조선의 전통 산수화와 대가들의 그림을 볼 때도. 유려하지만 난해하다. 한국화에 대한 속내였다.



전환의 계기가 왔다. 대학원 수업에서였다. 도록으로 봐도 압도적인 넓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풍경들이네. 듬성듬성 자리한 낮은 언덕들이 정겹다. 오른쪽 세 폭에는 오솔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한국화를 알고 싶어졌다. 이상범의 ‘귀로’를 만나고 나서야.



궁핍했다. 보통학교 시절 교과서를 살 수도 없었다. 소년 이상범은 빌려다 베꼈다. 글씨는 물론 그림까지 전부다. 화가의 삶이 움텄다. 가난을 뚫고서. 18살인 1915년, 학비를 받지 않는 서화미술회에 입학했다. 어떤 만남은 삶을 결정짓는다. 조선 왕실의 마지막 궁중화원이었던 안중식에게서 전통 산수화를 익혔다. 성실함이 더해진 재능. 자신을 뛰어넘을 듯 따라오는 배움. 어느 스승인들 들뜨지 않으리. 안중식은 자신의 호를 이상범에게 물려주었다. ‘심전’의 ‘전’을 가져온 ‘청전’, 청년 심전이 이상범의 호다. 원조 심전은 알았을까. 제자가 날개를 달고 품을 벗어나리라는 것을. 조선이라는 시대는 저물었다. 아스라이….





무릉도원 아닌 삶의 풍경 화폭에



“종래 우리 화단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것으로 (…) 사생적 작풍을 동양화에 운영한 점은 화단에 새로운 운동이 있은 후 첫 솜씨로 볼 수 있다” 1923년 제3회 서화협회전 출품작 이상범의 ‘해진 뒤’에 대한 일간지의 평이다.



발걸음을 뗐다. 이상범은 조선의 전통 산수와 결별을 선언했다. 상상 속 이상향을 지워냈다. 그 자리에 초가집을 들여왔다. 가족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길을 내었다.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 근대 산수화의 문이 열렸다. 두근거린다. 이상범의 포부는 이토록 컸다. 왜소한 체구를 훌쩍 뛰어넘듯이. 그 때 나이 26살이다.



우리의 근대는 억지로 도래했다. 일제에 의해. 1922년 총독부가 도입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일본의 신남화와 서양화가 소개되었다. 이상범은 특선을 거듭한 선전의 스타 작가였다. 그는 다짐했다. 나의 산수화를 개척하겠다고. 강제로 들이닥친 변화의 틈새에 길을 내고 말겠다고. 청전의 ‘사경(寫景)’. 현실에 발 디딘 풍경을 그려냈다. 예술가란 신비롭다. 갇힌 시대에도 창문을 연다. 고맙다.



평범하고 소박하다. ‘설산귀려’(1949)에는 눈길을 헤치는 나그네가 있다. 그가 무사히 도착하기를. ‘귀가’(1955) 속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지게를 친 촌부가 보인다. 어깨의 짐이 그를 짓누르지 않았으면. 취할 거 같다. 흐드러진 산야의 정취에. 애처롭지는 않다. 이들이 돌아가서 쉴 곳이 있음을 알기에.



“현대 한국화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고유한 형태와 정서를 창현함으로써 완전히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1961년 ‘한국화는 형성될 수 있을까’란 제목으로 한 일간지에 실린 이상범의 글이다. ‘귀로’ 속 옅은 안개에 잠겨본다. 자기연민에 빠지고픈 날에. 병풍 속 간신히 내어진 초로를 따라간다. 용기를 얻고픈 날에는.



애국과 친일의 경계를 오고 갔다. 이상범은 1936년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에게서 일장기를 지워냈다. 이후 일제의 징병제를 찬양하는 그림을 그렸다. 질곡의 시절이었다. 사람에게 기어이 양면의 얼굴을 내보이게 했던.



이상범은 소박한 날들을 염원했으리라. 오래도록 주변의 자연 풍경들을 담아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귀로’ 속 산세로 걸어간다. 흙의 내음이 전해진다. 진하게. 평범한 오늘이 사랑스럽다.





당혹감 뒤 찾아온 무채색의 안온함



한겨레

권세진, ‘다중시점’, 2021, 권세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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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쉬고 싶어서였다. 흑백 사진으로 보이는 작품으로 다가선 이유다. 2년 전 아트페어 출장 때다. 권세진의 ‘다중시점’과의 첫 만남이다. 다시 보니 수묵화다. ‘한지에 먹’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피곤함이 달아났다. 오묘함을 품은 권세진의 한국화를 알고 싶어졌다.



‘바사삭바사삭’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들린다. 수풀이 무성하게 펼쳐져 있다. 오른쪽 근경의 남성이 보인다. 느긋하다. 테이크 아웃 커피에 한가로움이 배어 있다. 화면 속 장소는 가본 곳은 아니다. 다만 익숙하다. 교외로 나가 마주칠 수 있을 듯한. 실지(實地)적인 수묵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의 감상이다.



시선을 옮겨본다. 아니, 조각낸 건가? 하늘이 깨어졌다. 분연(紛然)하게. 뒷모습을 보이는 모자를 쓴 사람이 갈라져있다. 난간과 계단도 잘라낸 흔적이 보인다. 당혹스럽다. 예상을 빗나갔기에. 한국화에 기대했던 평온함이 달아났다.



“감상에 젖지 마, 나쁜 일은 생기기 마련이야.” 영화 ‘이토록 뜨거운 순간’의 대사다. ‘다중시점’을 읽어내다 떠올랐다. 사랑의 열병을 앓는 아들에게 건네는 어머니의 말이다. 너무 차가운 거 아냐? 한껏 주인공에 몰입하던 나는 20대였다. 그 대사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건 나이가 들며 알게 되어서일까. 무채색의 안온함은 아주 가끔 찾아온다는 것을.



‘다중시점’은 보기에 따라 다르다. 수풀들이 빛을 낸다. 어두운 먹색일지라도. 그림 앞에 정면으로 섰을 때는. 눈을 위로 본다. 멀리 숲들이 뭉쳐있다. 컴컴하다. 반짝였던 기분이 가라앉는다. 시선을 달리 했을 뿐인데. 지평선 위는 더 복잡하다. 구름은 흘러가다가 멈춘다. 공간을 제멋대로 분절한다. 종잡을 수가 없다. 편견을 뒤집는다. 누가 동양적인 것이 정적이다라고 했을까.



“성산일출봉을 여러 시점에서 표현한 작품이다.” ‘다중시점’에 대한 권세진의 설명이다. 모른다고 단정했는데 알던 곳이었다. 몇 년 전 제주에서 일하며 자주 갔던 장소였다. 캔버스 속 조각난 풍경들은 묻는다. 진짜와 착각의 경계선을 긋고 있지는 않느냐고. 커피를 든 사람의 기분을 이제 알기 어렵다. 여유가 아닌 걱정을 품고 있을지도.



‘조각 그림’ 권세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찍는다. 해체한다. 재조립한다. 독특하되 가볍지 않다. 새롭게 붙인 이미지들은 삶의 다양한 서사들로 다시 태어난다. 시간을 켜켜이 축적한 먹의 번짐과 함께. 춤을 추듯 생동하는 동양화다. 영화 ‘이토록 뜨거운 순간’ 속 냉정한 대사가 이해되었다. 인생은 예측불허다. 불행과 행복은 하나의 초점으로 모이지 않는다.



바라본다는 건 생성해내고 있음을. 그림 속 무성한 풀들 옆에 바짝 서본다. 겁이 난다. 헝클어진 풀 잎사귀에 베일 거 같아서. 화폭의 오른쪽 빈 계단에 앉는다. 비스듬히. 눈을 뜨면 하늘이 있다. 점찍은 듯한 구름들이 떠있다. 온전히 행복했던 기억이 스민다. 삶의 장면들은 이토록 입체적이다.



‘다중시점’의 어긋난 풍경들이 말을 건다. 살아가며 원하지 않는 장면을 마음대로 잘라내서 버릴 수는 없다고. 다만 이어서 붙여본다. 그 자체로 당신의 삶은 멋스럽다.



바람이 말한다. 더디게 가을이 왔다고. 걷기 좋은 이 순간의 풍경을 붙잡아 물들여 보길. 먹이 번진다. 한국화를 보고픈 선선한 날들이다.



우진영 미술 칼럼니스트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기질만 있고 재능이 없단 걸 깨달았다. 모네와 피카소보다 김환기와 구본웅이 좋았기에 주저 없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했다. 시대의 사연을 품고 있는 근대미술에 애정이 깊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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