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의 세계사
로만 쾨스터 지음 |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428쪽 | 2만6000원
필리핀 마닐라의 쓰레기장 스모키마운틴. 1990년대에는 주민 3만명이 이곳에 거주했다. 1992년 촬영된 사진이다. 흐름출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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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쓰레기는 숙명과도 같다. 간단한 생명 유지 활동부터 복잡한 사회경제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단계에서 쓰레기가 만들어진다. 독일의 쓰레기 경제 전문가 로만 쾨스터는 <쓰레기의 세계사>에서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인간이 존재하고, 인간은 늘 쓰레기를 만든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에게 쓰레기라는 표현은 주로 ‘쓸모가 없어진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전근대 시기 도시 쓰레기의 대부분은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이었다. 서양에서 배설물과 고형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전근대 시기에 물건을 버리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원자재와 물자가 부족해 대부분 재활용을 했기 때문이다. 중고 부품을 사용해 망원경을 만들고, 여기저기서 떼내온 나무판자로 배를 만들며, 폐지를 사용해 종이를 만들었다. 빈이나 베르사유 궁전의 귀족들 사이에서조차 중고 거래가 활발했다.
쓰레기 처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유럽을 시작으로 도시화와 인구 증가, 생산 능력 증대, 운송 및 통신수단의 발전이 겹치면서다. 이제 효율적인 쓰레기 처리는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서구 주요 도시들은 악취 피해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1840년 이후 하수도망을 건설했다. 독일 함부르크는 1840년대, 영국 런던은 1860년대, 프랑스 파리는 1890년대에 하수도 건설을 시작했다. 미국 대도시들은 1880년대 이후 하수도망을 건설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사이에는 쓰레기 수거가 공영화되고 주요 도시에 위생 규정이 마련됐다.
대도시는 말그대로 쓰레기와 ‘전쟁’을 벌였다. 1895년~1898년까지 뉴욕시는 쓰레기 수거를 위해 군인까지 동원했다. 청소부들은 하얀 유니폼을 입어 ‘화이트 윙스(White Wings)’로 불렸다. 1년에 한 번 열린 대규모 퍼레이드에는 3000명에 이르는 군인과 청소부들이 참여했다.
1941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청소 노동자들이 쓰레기통을 쓰레기 수거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흐름출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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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수거를 위해 쓰레기통을 사용한 것은 19세기 이후다. 그 이전에는 구덩이나 도랑을 이용했다. 맨해튼에는 1849년에도 약 3만여 개의 구덩이와 도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에서 뚜껑이 달린 쓰레기통이 보편화된 것은 1870년대 이후다. 뚜껑 달린 쓰레기통은 튼튼하고 쥐나 해충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장점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는 ‘쓰레기 폭발’의 시대다. 전후 실질 임금이 상승하면서 대량소비 사회가 도래했고, 공급 측면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대세를 이루면서 쓰레기가 구조적으로 늘었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에서 식료품 중 50%는 포장을 뜯기도 전에 버려진다.” 유리병 대신 캔과 플라스틱병 사용이 일반화하고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나는 등 쓰레기의 질적 구성도 변화했다.
쓰레기에 관한 논의는 결국 수거한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과거 가장 손쉬운 쓰레기 처리 방법은 강이나 호수, 바다에 버리는 것이었다. 시카고는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미시간호에 쓰레기를 버렸다. 그러나 단순 투기는 악취와 전염병 확산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해법으로 등장한 것은 매립과 소각이다. 1910년대 미국에서는 “쓰레기를 쓰레기장에 쌓아둔 뒤 흙으로 덮어 누르는” 위생 매립 방식을 사용했다. 1870년대 이후에는 쓰레기를 소각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문제는 매립과 소각 모두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쓰레기 양이 급증한 국가들 중 다수가 1960년대 위생 매립 방식을 도입했다. 그러나 대량소비 사회의 쓰레기는 “수많은 화학 물질, 공장의 산업 부산물, 염료, 기름, 세탁과 설거지 세제, 매립지에 버려져 뜻밖의 화학 결합을 형성하는 플라스틱” 등 이전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였다. 매립지가 사회경제적 소수 집단 거주 구역에 주로 건설된 것도 문제다. “매립지는 가난한 지역에 먼저 건설되었다. 이는 낮은 땅값 때문이기도 했지만, 체계적인 차별과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뚜렷한 연관성이 있다. 쓰레기장은 낙인이었다.”
소각장은 초창기에는 현대적이고 위생적인 시설로 간주됐다. 매립지와 달리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소각 과정에서 발생한 열을 전기로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각장 건립에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다. 1950년 미국 마이애미에 설치된 세계 최대 규모 소각장 건립에는 330만달러가 투입됐다. 1980년대에는 환경 규제 강화로 건립 비용이 열 배로 치솟았다. 1977년 네덜란드 소각장 필터에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인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소각 시설은 “잘못된 쓰레기 처리법의 상징”이 됐다. 저자는 “현대 쓰레기 처리의 역사는 혁신의 묘지”라고 못박는다.
인류는 기술을 통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바다 위를 떠도는 거대한 쓰레기 섬은 그러한 믿음이 순진한 희망이었음을 입증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를 버리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시사한다.
“쓰레기 양을 근본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은-적어도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일상을 비싸고, 느리고,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중략) 그럼에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는 필요하다. 우리는 쓰레기가 우리 자신에게, 일상과 삶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거의 방법으로는 오늘날 쓰레기를 감소시킬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만으로도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 생각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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