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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오타니의 고교 내신 성적은 85점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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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오타니 쇼헤이가 19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7회 초 50호 홈런을 친 후 환호하고 있다. 마이애미=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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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의 상징인 오타니 쇼헤이(LA다저스)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1시즌 ‘50홈런-50도루’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미국과 일본에선 연일 오타니의 성공 스토리를 쏟아내고 있다. 오타니의 50번째 홈런공은 거액에 미국 경매 시장에 나왔고, 일본 언론들은 기념비적인 기록이 나올 때마다 호외까지 발행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언론에선 경기가 끝날 때마다 오타니가 새로 작성한 기록들을 소개하고, 홈런과 도루를 추가하면 경기 중에도 알리고 있다. 일본인을 평가할 때 덧씌워보는 반일 감정도 오타니 앞에선 파고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오타니 열풍이 식을 줄 모르면서 그의 천부적 재능과 꾸준한 노력이 조명 받고 있지만, 오타니의 스승이 말하는 '숨겨진 성공 이유'도 곱씹어 볼 만하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1년 전 일본 스포츠가 한국을 제치고 도약한 비결을 취재하기 위해, 오타니의 모교인 일본 이와테현 하나마키히가시 고교를 찾았다. 오타니가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존경심을 드러낸 사사키 히로시 야구부 감독에게 오타니의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사사키 감독은 오타니를 포함해 109명의 선수들이 단순히 야구만 잘하도록 키우는 걸 목표로 삼지 않았다고 했다. 야구도 할 줄 아는 훌륭한 인간을 키우려 했다는 것이다. 오타니가 투수와 타자를 겸해 ‘이도류’(二刀流)로 불리고 있지만, 사사키 감독에게 이도류는 학업과 운동의 병행을 의미했다. 오타니도 사사키 감독의 권유로 고교 시절에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실제로 오타니의 모교에선 모두가 예외 없이 철저히 공부한다. 오타니처럼 직업 운동선수를 꿈꿔도 낙제점을 못 넘으면 졸업할 수 없고 야구부 활동도 금지된다. 오타니의 내신 점수는 고교 3년 동안 평균 85점으로 준수했다. 이 학교 출신의 또 다른 메이저리거인 기쿠치 유세이(휴스턴 애스트로스)는 80점이었다.

일본은 한국처럼 운동 선수와 일반 학생을 구분해 한쪽으로만 걷게 만들지 않는다. 학생 선수에게 공부를 시키면 학부모까지 반발하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사사키 감독은 "우리 부원 중에는 야구 선수보다는 다른 꿈을 꾸는 학생들이 더 많다. 야구 선수가 돼도 30세를 전후해 은퇴하기 때문에 나머지 인생에서 필요한 건 지력(智力)"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운동하는 학생에게 공부와 독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선수가 운동에만 목숨 걸지 않는 분위기. 역설적으로 일본 스포츠의 힘은 학업과 운동 중 한쪽만 강요하지 않는 교육 환경에서 나온다. 운동을 하다가 이탈하더라도 또 다른 길이 있기에,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부담이 덜하다. 오타니도 그런 부담이 없었기에 좀 더 순조롭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운동하면 공부 안 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일본국가교육정책연구원이 2017년 전국학력시험 결과를 분석해 보니, 중학교에서 운동부 활동을 하지 않은 학생들의 정답률이 모든 교과에서 가장 낮았다. 하루 한두 시간 활동한 학생의 정답률이 가장 높았고, 두세 시간 활동한 학생들이 다음으로 높았다.

한국은 어떠한가. 학생 선수 10명 중 9명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외길 인생을 살아왔기에 다른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제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운동만 하는 학생이 아니라, 운동도 하는 학생을 키워야 한다. 오타니의 성공이 알려주는 숨겨진 교훈이다.

강철원 엑설런스랩장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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