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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목)

[한반도평화만들기] 5년짜리 ‘통일 정책’으론 한계…정쟁 수단 아닌 국민적 합의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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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앞둔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중앙일보

한반도평화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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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담론을 둘러싼 남북의 ‘강대강’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먼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화 통일을 부정하며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들고나오자, 윤석열 대통령이 “북녘땅으로의 자유 확장”을 내세운 ‘8·15 통일 독트린’으로 대응했다. 양측 모두 ‘공존’보다 ‘힘에 의한 평화’를 앞세우는 모양새다. 남북 관계의 중요 변수인 11월 미국 대선의 향방도 불확실하다.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산하 한반도포럼에선 지난 23일 ‘미국 대선을 앞둔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평가’란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 사이에선 “진영 논리에 갇혀 정권(5년)마다 바뀌는 통일 정책은 힘이 없다”, “통일 정책을 더는 정쟁 수단으로 쓰지 말자”는 등의 지적이 나왔다. 그런 차원에서 “진영과 계층 간 ‘최대공약수’를 찾아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통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발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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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란 헌법 3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규정한 헌법 4조에 근거한 통일 정책 추진을 강조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유의 북진통일’을 골자로 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북한도 지난해 말부터 대남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설정하고 통일(평화통일)과 민족(동족)을 부정하고 있다. ‘영토평정론’을 전면에 부각하며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1991년 체제 후 유지돼 온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란 원칙은 종언을 알리고, 양측 간엔 무력충돌 위기가 번지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2차 북핵 위기를 촉발했던 고농축 우라늄(HEU) 시설을 공개했다. 미국에 HEU 핵물질과 핵폭탄이 ‘통제 불가능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하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와 대화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과 만든 남북, 북미, 6자 등의 모든 합의는 역설적으로 발효 직후부터 사문화의 길로 들어섰다. 합의이행이 어려웠던 건 북한이 남북·북미대화를 수령체제 유지·강화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한국은 대북정책과 관련한 남남갈등 등으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등 ‘근본문제’ 해결을 미루고 북핵 협상 등에서 ‘동결 대 보상’ 의 미봉책으로 일관한 것도 작용했다.

그래도 새로운 평화 만들기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 평화협정 전환은 주한미군문제 등으로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이보다는 1992년 한중수교모델을 적용해 북미 수교, 북일 국교정상화, 남북기본조약 체결 등을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한반도 두 국가 주장을 헌법에 명문화하고 영토 규정을 새롭게 할 경우에 대한 대응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독일의 실용적 통일정책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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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박문수 미래와가치 회장, 김진표 전 국회의장,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중앙홀딩스 회장), 정동영 국회의원,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남성욱 고려대 교수,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윤상현 국회의원, 전홍택 KDI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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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 국민의힘 국회의원=8·15 통일 독트린은 대한민국 영토 등을 규정한 헌법 3, 4조에 충실하다. 개헌이 없는 한 우리 정부로썬 자유 질서에 입각한 통일 정책을 할 수밖에 없다. 흡수 통일이란 비난이 있지만, 북한 정권의 변화가 무망한 상태에선 어쩔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통일의 주체를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으로 규정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과거 서독은 자국 영토를 동독까지로 규정하면서도 주권 관할 조항을 둬 현실적으로 헌법이 미치는 범위를 서독에 한정했다. 동서독기본조약 체결로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고 ‘국가 대 국가 간 특수관계’로 대화했다. 독일 같은 실용성이 있어야 정책의 신축성을 가진다. 8·15 통일 독트린은 우리의 운용 공간을 스스로 축소한 것 같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여야 합의가 어려운 정치환경과 남한을 적대국으로 여기는 북한의 태도 속에 정부로선 진전된 통일 방안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은 윤석열 정부에게선 얻을 게 없고, 미국과 11월 대선 이후 대화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1차 분수령은 미국 대선이 될 것이다.

정치개혁 등 통일 역량 강화가 우선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트럼프·해리스 당선 모두 장단점이 있다. 트럼프가 되면 워싱턴 조야가 한반도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겠지만 미 유권자만 의식한 불완전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 해리스의 경우 한미, 한미일 협력 구도는 유지되겠지만 ‘전략적 인내 3.0’이 될 우려가 있다. 중요한 건 우리다. 정치개혁·지방자치 강화·양극화 해소 등으로 통일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역대 정권의 대북정책은 자기 진영만의 반쪽짜리 합의였다. 정권이 교체되면 대부분 사라졌다. 8·15 통일 독트린도 2년짜리일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외교안보 어젠다는 여야 합의가 없으면 발표하지 못하게 법제화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트럼프든 해리스든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한국의 통일 정책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2002년 북한을 “악의 축” 이라 부른 직후 한국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김대중 대통령은 “젖먹던 힘을 다해 설득했다”고 술회했다. 결국 개성공단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한반도를 가장 잘 아는 건 미국이 아닌 우리다.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가보다 우리의 주체적 역량이 더 중요하다.

미국·베트남 수교 과정 연구해야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8·15 통일 독트린은 북한 정권이 포용하기 어려운 북한 주민의 인권만 강조했다. 독트린이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통한 ‘통일 버리기’를 도운 셈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입장에 동조하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마저 통일의 필요성이 없다고 결론 내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통일은 물 건너간다. 우리라도 91년 이후 세워진 남북관계 특수성을 최대한 붙들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통일은 북한과 외국을 설득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그러려면 관련 토론이 활발해야 하는데 국내에선 정치권이 이를 봉쇄하고 있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만 대북 정책을 이용한다. 개헌이 어렵다면 선거법이라도 고쳐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구조가 된다. 국민 세금을 받는 정당들이 왜 국민을 반으로 나누는 정치를 하는가.

▶전홍택 KDI 명예교수=북미 수교 관련해 베트남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제 개방이 성공했던 중요한 전제조건이 미국과의 수교다. 대국인 중국의 사례는 북한에 적용하긴 어렵지만, 베트남은 다르다. 과거 베트남은 협상 초기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면서 타결의 돌파구를 열었다. 미국·베트남 수교 과정을 들여다보면 핵협상 등에 적용할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박문수 미래와가치 회장=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간에 남북문제만큼은 미국에 맡기기보다 우리 스스로가 일치된 의견으로 입장을 천명했으면 좋겠다. 정치권이 여야든 진보 보수가 됐든 간에 일관된 의견을 내 정책을 지속했으면 좋겠다. 서독은 몇십년 동안 동독에 약 300조원을 지원했다. 현재 남북 간 대화 자체가 단절된 건 부끄러운 일이다.

91년 기본합의서 체제 지켜야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생물 진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단세포가 외부에서 들어온 미토콘드리아와 공존을 선택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외부 침입자를 파괴하는 것만을 생존 전략으로 삼았다.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를 받아들이면서 다세포가 되고 나아가 사람까지 됐다. 통일 문제에서도 상대방과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많은 어려움 속에 만든 91년 기본합의서 체제를 남북 스스로 부숴서는 안 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사회)=남북 대화는 2018년 이래, 북미 대화는 2019년 이후 단절 상태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지켜야 할 러시아는 오히려 북한과 핵 동맹을 체결하는 단계까지 왔다. 사실상 북핵 문제의 국제화, 핵 대결 시대로 접어든 셈이다. 이 와중에 국내 진영대결은 최악으로 가고 있다. 이젠 한국과 미국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중앙홀딩스 회장)=급변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우리 지도층이 낚아챌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기존 통일 정책은 정권마다 합의를 못 이루고 자기 진영만의 5년 어젠다에 그치며 금방 힘을 잃었다. 가장 좋은 정책은 합의된 정책이다. 진영과 계층 간의 최대공약수를 찾아 나가야 한다. 우리 같이 분열된 사회에선 처음엔 그것이 아주 작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키워나가는 노력이 통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승호·장윤서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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