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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목)

병원장 예식비, 조합원 이사비 대납…리베이트 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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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불법 리베이트 공개



중앙일보

국세청 민주원 조사국장이 25일 건설·의약품 등 리베이트 실상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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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약품 업체 A사는 자사의 의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곧 결혼을 앞둔 한 병원장 부부의 고급웨딩홀 예식비, 호화 신혼여행비, 명품 예물비 등 수천만원을 대신 지급했다. 또 의사 자택으로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소파 등 고급가구와 대형가전을 배송하고, 상품권·카드깡 형태로 금품을 지급하는 등 총 수백억원을 제공했다.

#2. 건설업체 B사는 재건축사업 시공사에 선정되는 대가로 조합장 자녀에게 수억원의 허위 급여를 지급했다. 또 다른 건설사는 재개발 시행사가 부담해야 하는 조합원 이사비 지원금 수십억원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모두 불법 리베이트다.

국세청이 불법 리베이트를 벌인 17개 건설 업체, 16개 의약품 업체, 14개 보험중개 업체 등 47개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고 25일 밝혔다. 리베이트는 판매한 상품·용역의 대가 일부를 다시 구매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위로, 일종의 뇌물적 성격을 띤 부당고객유인 거래를 의미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건설업체들은 자금 마련 과정에서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하거나, 우월적 지위에 있는 시행사·재건축조합 등 발주처의 특수관계자에게 가공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지급했다. 한 건설사는 재건축 수주 대행업체에 부풀려진 용역대가를 지급한 뒤, 재건축 조합원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시행사가 부담해야 할 분양 대행 수수료를 대납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건설사 리베이트는 불필요한 지출을 유발해 아파트·주택 등의 품질 하락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건설 분야의 접대비 지출액은 2018년 대비 2022년 66.6% 증가하는 등 공사수입 금액(15.5%)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연구개발(R&D), 고객서비스 등에 지출할 여력을 잠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개 의약품 업체는 처방 권한을 독점하는 의료인에게 다양한 수단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한 의약품 업체는 병원장의 배우자와 자녀 등을 업체 주주로 등재한 뒤 수십억원 배당금을 지급했다. 또 직원 가족 명의의 위장 영업대행사(CSO)에 허위용역비를 지급해 자금을 조성한 뒤 우회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동안 의약시장 리베이트는 적발이 쉽지 않았다. 의료인과 절대적인 갑을(甲乙) 관계인 만큼 의약품 업체가 향후 거래 중단 등을 우려해 리베이트 자금 최종귀속자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세무조사에서도 업체 영업담당자들이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료인을 밝히느니 그들의 세금까지 부담하겠다”고 호소하기도 했을 정도다. 국세청 관계자는 “과거 세무조사에선 여러 가지 한계로 제공 업체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데 그쳤으나, 이번엔 끈질긴 노력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을 특정해 소득세를 과세했다”고 밝혔다.

CEO보험(경영인정기보험)을 활용한 신종 수법도 등장했다. CEO보험이란 CEO 또는 경영진 사망이나 심각한 사고 발생 시에도 사업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보험금을 법인에 제공하는 상품이다. 이를 통해 기업법인의 특수관계자를 보험설계사로 허위 등록하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데 수억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리베이트 수수 행태는 아파트 부실시공, 의약품 오남용 등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반사회적 리베이트 탈세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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