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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목)

[역사와 현실]스스로 하야한 권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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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메이지유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은 마지막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의 대정봉환(大政奉還)이었다. 1867년 11월 요시노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넘겨주고 쇼군직을 사임했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하야(下野)한 것이다. 역사에서는 자기 권력에 끝까지 집착하다가 비참하게 무너지는 일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유력했었다. 즉 사쓰마번·조슈번의 공격으로 수세에 몰린 요시노부가 선제적으로 정권을 반환해 여론을 반전시킨 후, 새로 구성될 정부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요시노부는 천황 밑에 ‘의사원(議事院)’을 만들어 그 리더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적지 않다. 대정봉환 선언이 있은 지 약 두 달 후인 12월9일 사쓰마번은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요시노부를 배제한 채 신정부 수립을 선언했다(왕정복고 쿠데타). 이를 본 요시노부는 가신들의 맹렬한 반대를 뿌리치고 교토의 니조성(二條城)을 나와 오사카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대정봉환을 통해 자신이 다시 권력을 잡으려고 했다면 이 두 달 동안 요시노부는 조정공작을 비롯해 갖가지 시도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대정봉환 상표(上表)에서 선언한 대로 전국의 다이묘(大名·봉건제후)들이 상경해 정부 수립에 대한 공론을 결정할 때까지 마냥 기다렸다. 그러나 정국이 어디로 굴러갈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노회한 다이묘들이 쉽사리 상경할 리 만무했다.그럼 요시노부의 진의는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이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놀랍게도 요시노부는 사쓰마의 궁정쿠데타가 있기 사흘 전에 그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家近良樹, <幕末政治と倒幕運動>). 그런데도 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그 정보가 아이즈번(會津藩)에 넘어가지 않도록 제어했다. 친막부 강경파인 아이즈번은 당시 교토수호직(京都守護職)의 직책을 맡아 교토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교토에 주둔하는 최대 병력이었다. 아이즈번이 쿠데타 정보를 알았다면 사쓰마번의 거병은 사전에 봉쇄되었을 것이다. 요시노부가 쿠데타를 사실상 묵인한 것이다.

그 이유는 도쿠가와 막부의 내부균열에 있었다. 약 1년 전에 쇼군에 취임한 요시노부는 원래 막부 주류파의 비토인물이었다. 그 아버지가 막부를 괴롭혔던 사람인 데다 혈연적으로도 종가와는 멀었다. 다만 조슈번 정벌이라는 비상상황에서 당시 쇼군이 급사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즉위한 사람이었다. 쇼군이 된 후 요시노부는 줄곧 교토에 머물렀고, 에도(江戶)에 있던 막부와 그를 따르는 아이즈번은 요시노부에 대해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 요시노부 역시 그런 막부(도쿠가와 종가)에 진심이지는 않았던 듯하다. 쇼군 요시노부에게는 사쓰마·조슈번도 적이었지만, 막부 주류파나 아이즈번도 내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대정봉환을 한 요시노부는 사쓰마·조슈번이 신정부를 독차지하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막부 잔당이나 아이즈번이 막부 권력을 되돌리려 하는 것도 안 될 말이었다. 이미 시대는 막부의 지속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가 사쓰마·조슈번 군대와 일전을 벌이려 날뛰는 막부 병사들을 뒤로하고, 오사카를 떠나 에도로 간 후 전쟁 회피를 선언한 이유다.

생각해보면 시세를 예리하게 간파해 자기 붕괴를 모면한 사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5공화국 세력은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도박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고, 장면 세력에게 시달리던 2공화국 대통령 윤보선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알고도 이를 용인했다. 요시노부가 의사원을 통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면 전자와 같았겠지만, 아무래도 그의 내심은 후자였던 것 같다.

경향신문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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