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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목)

응우옌에게 태권 교관은 참 좋은 사람들이었으나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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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3년 9월 기타를 치며 백마부대 군가를 부르고 있는 응우옌 응옥우언. 한베평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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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우 |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그래도 태권도 교관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지난해 9월, 베트남 냐짱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쩝레 마을에서 들은 이야기다. 이곳은 베트남전쟁 당시 백마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1967년 10월26일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한베평화재단이 그동안 자료로만 쩝레 학살을 파악하고 있었는데 마을을 직접 방문해 생존자와 목격자를 만날 수 있었다.



태권도 교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당시 쩝레 마을 답사를 도와준 응우옌 응옥우언(71)이었다. 그는 당시 사건의 목격자다. 그가 쓴 학살 사건 수기를 발견하여 그를 수소문했고, 마을 답사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그는 정말 열의를 다해 학살 피해자들을 소개해주었는데 직접 답사 일정표까지 짜서 보내줬을 정도였다. 과연 그를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서 너무도 생생한 그 날의 아픈 기억을 들을 수 있었다.



쩝레 학살 이야기에 몰두한 내게 그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로 태권도 교관단에 관한 추억이었다. 어린 시절 백마부대 태권도 교관에게 배웠다던 태권도 품새를 보여줄 정도였다. 화룡점정은 그가 기타를 치며 아리랑과 백마부대 군가를 불렀을 때였다. 그는 최근에도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태권도 교관의 사진도 보여주었다. 한국군의 전쟁범죄 고발에 진심이었던 그는 태권도 교관과 나눈 정겨운 추억을 기억하는 데도 진심이었다.



그는 학살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한편, 편향된 기억을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전쟁 시기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한국군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많이 퍼뜨렸고, 그 반대편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군의 전쟁범죄는 그 자체로 역사에 기록하여야 할 진실이지만 모든 한국군을 나쁘게 매도해서는 안 된다며 “이쪽이 무조건 나쁘거나 저쪽이 무조건 악인 그런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나는 태권도 교관이었어요.” 얼마 전 한베평화재단을 불쑥 찾아온 한 참전군인이 있었다. 베트남 하꽝 마을 컴퓨터 교실 지원사업에 후원금을 보낸 그가 집 근처에 재단 사무실이 있음을 알고 방문한 것이었다. 그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군의 과오에 공감하지만 참전군인들이야 어쨌든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부분이 있고, 자신처럼 베트남 사람들과 잘 지내고 온 경우도 있지 않냐고 했다. 참전군인들에 대해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바라지만 정작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개탄하기도 했다. 나는 그날 흑백 사진 속 태권도 도복을 입은 젊은 날 그를 보고 쩝레 마을에서의 일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연이 두번 이상 반복되면 필연일까. 나는 얼마 전 전북 무주 태권도박물관에서 태권도 교관단 베트남 파병 60주년 전시 ‘따이한, 태권도’를 보고 왔다. 파병 기간 한국군이 베트남에 태권도를 보급한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태권도 교관단과 베트남인들 모두가 하얀 도복을 입고 품새를 익히는 사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형적인 전쟁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한국군이 민사작전 차원에서 태권도 보급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한국 시민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은 ‘불편한 과거사’지만 태권도박물관에선 그렇지 않았다. 박물관의 스토리텔링에서 베트남전쟁은 태권도 붐을 일으킨 화려한 역사적 시공간이었고 오늘날 올림픽 주 종목으로 자리 잡은 태권도 세계화의 출발점으로 긍정되고 있었다. ‘따이한, 태권도’ 전시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군사주의적 관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었고, 태권도 본연의 정신이 과연 전쟁 동원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응우옌 응옥우언이 이번 전시를 봤다면 어땠을까. 베트남전쟁사에 대한 전시 내용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들과 전시관에 재현된 당시 태권도장을 보며 옛 추억에 잠길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처럼 태권도 교관들은 베트남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군복을 입은 전장의 한국군과 다르게 하얀 도복의 태권도 교관들은 무도 수련뿐만 아니라 한국 노래를 알려주는 등 정감을 나누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태권도 교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더라도 교관 역시 한국군임을 모르는 베트남인은 없을 것이다. 한국군은 어떤 목적과 명분으로 베트남에 갔는가. 태권도 교관단에 대한 좋은 기억도 이미지도 그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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