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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소멸, 독립서점, 그리고 우리의 별들 [컬처노믹스 : 에필로그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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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문학전문기자, 홍승주 기자, 최아름 기자]

# 정부는 지방 소멸의 대책으로 더 좋은 직업과 더 좋은 기업을 이야기한다. 돈 더 주고, 일자리 보장해 줄 테니 아기를 낳아달라는 투다. 표면적으론 그럴듯하지만 이런 정책은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 왜일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은 '소멸과 소생, 컬처노믹스'란 시리즈의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➊ 책 읽지 않는 시대, 역설적으로 책을 찾는 MZ

➋ "독서는 섹시하다" 텍스트힙에 숨은 함의들

➌ 지역 소멸하는데, 지역서 서점 여는 청년들

➍ 서점이 사람 모으고, 사람이 문화 만드는 경로

➎ 아무도 말하지 않은 동네서점 속 컬처노믹스

# 지난 석달간 우린 그 답을 찾기 위해 전국의 독립서점을 탐방했다. 현장 곳곳에서 '쉼과 문화와 삶을 달라'고 외치는 청년들의 외침을 들었다. 그 사이에서 싹트는 '컬처노믹스'의 작은 열쇠도 찾았다. 대한민국 문화혈관 복구 프로젝트 두번째 에필로그다.

더스쿠프

지방 소멸을 해결할 방법 중 하나는 문화적 거점을 만드는 것이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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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서치라이트는 부채꼴 모양으로 어둠을 지우고 있었다. 서울에서 충북 제천, 그리고 다시 남해를 찍고 강원도로 향했다. 인구소멸 지역의 독립서점들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낮에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밤에는 지역을 넘어다녔다. 영업시간에 최대한 많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야간에는 드론 촬영 허가를 받는 게 어렵다는 점도 '야간주행'을 부추겼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또 하늘에서 영상으로 서점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은 낮뿐이었다. 대화와 일로 가득 찼던 낮과 달리 밤은 조용하다.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질 때가 있다. 도로 위 차들이 모두 사라지고 가로등마저 없는 구간이 오면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길에는 오직 어둠만이 가득했다. 취재팀이 모는 차량의 엔진 소리와 주파수를 잃어버린 라디오 소음만이 어둠 속에서 함께했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소음마저 어둠에 모두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는 했다.

시속 100㎞로 달려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는 우리가 제자리에 있는 건지 아니면 달리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주에 홀로 남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마치 성간우주로 넘어간 보이저호號처럼 끝없이 달리면 달리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곤 한다.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 1990년대생으로 구성한 더스쿠프 현장 취재팀과 내가 취재를 시작한 건 다소 떠들썩한 뉴스 덕분이었다. 50년 내에 사라질 지역은 무려 78곳. 대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하니 이것은 소리 없는 멸종이었다.

사람들은 줄곧 인류의 위기를 떠올릴 때면 거대한 운석의 추락이나 질병, 전쟁, 그도 아니면 상상 속 좀비 따위를 생각하고는 했다. 하지만 단순히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가 소멸해 버린다니, 우리의 삶은 이미 아포칼립스(종말, 대재앙·Apocalypse)였다. 조용히 진행되는 대멸종은 이미 바꾸기 어려운, 일종의 묵시默示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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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내가 결혼할 나이가 되고 나니 벌써 결혼한 친구들과 안 한 친구들이 뚜렷하게 나뉘었다. 결혼을 언제 할 거냐고 농담처럼 물으면 다들 뚜렷한 이유를 이야기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실없는 농담을 하는 것처럼 치부했다. 술을 먹고 밥을 먹고 다른 친구의 결혼 이야기를 듣다가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렸다.

그사이 내 나이인 1990년대생이 인구소멸을 막을 마지막 마지노선이라는 뉴스를, 전문가들이, 또 정부가 끊임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나도 내 친구들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해도 너무 먼 이국의 이야기처럼 그것이 실제로 와닿았던 적은 없었다. "한 세대가 한반도의 인구소멸을 지킬 영웅"이란 이야기는 "동화 속 주인공이 사실 우리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습게 여겨졌다.

그 과정에서 우리 세대는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서로 다르게 이야기했다. 성차별, 취업률, 집값 등이 문제라고 말이다. 물론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것만 해결하면 정말 아이가 태어날까.

달리고 달려도 같은 곳을 달리는 듯한 착각에 잠이 쏟아지면 졸음 쉼터에 차를 대고 스트레칭을 했다. 도로를 달릴 때는 모르지만 한 걸음 떨어져 고속도로를 옆에서 보면 그제야 내가 길을 따라 달려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산과 산 사이를 뚫고 끝 없이 나 있는 도로의 지평선을 바라보면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둥근 행성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렇기에 길을 계속 달리면 거대한 낭떠러지를 만나는 게 아니라 다시 이어지는 새로운 길이 나올 것을 상상한다.

이번 취재에서 경남 하동에 위치한 폐교 운동장에 서점을 만들었다는 '이런책방'을 찾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서점 벽 한쪽에 꽂혀 있는 웨딩 스냅 사진이었다. 내 또래의 책방지기들은 자신들이 서점을 직접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책방지기들 중 두명이 이곳에서 결혼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서점에서 스냅 사진을 찍었다. 다들 환하게 웃고 있었고 자신들이 만든 공간에서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이들은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각기 직업이 있었지만 하동으로 내려와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대구에서 서점을 하다 온 가족을 데리고 경북 청도로 넘어온 '오마이북' 사장님, 독서 운동을 하다가 충남 금산에 직접 책방을 차려버린 '책방카페에서' 사장님, 강원도 영월 산속에 서점을 만들었다는 '인디문학 1호점', 책방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아내와 함께 남해가 보이는 곳에 책방을 열어젖힌 '스테이위드북'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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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차린 이유는 모두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있었다. 안정적으로, 자본을 쌓을 만큼 돈을 벌고 있는 서점은 없었다. 이들은 문화 운동을 하거나 혹은 자기 자신의 목표를 위해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서점이 돈을 못 버는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문제도 산적해 있었다. 대형서점보다 비싸게 책을 공급받는 문제, 더 나아가서는 독립서점에는 책을 주지 않아서 알라딘이나 대형서점에서 책을 사서 다시 지역서점에서 파는 일.

그런데도 이들은 서점을 연다.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마케팅업을 해서 돈을 벌어 가면서 서점을 유지한다. 그들에게 서점은 자본적 생존 수단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체 왜….

나는 최근에 결혼을 마음먹었다. 막상 결혼을 하겠다고 생각하니 제일 먼저 생긴 두려움은 집이나 직장이 아니었다. 바로 시간이었다. 지금 같이 아침에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일을 하는 환경에서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더 내는 게 가능할까.

그러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를 위해선 어떻게 시간을 쓸까. 생존과는 또 다른 고민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미래의 아내 역시 고민은 비슷했다. 충분히 서로를 위해, 아이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을지 걱정했다.

서점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풍경을 만났다. 같은 여름이더라도 하동의 햇빛이 더 부드럽다는 것을, 남해의 바다는 마치 천을 깔아 놓은 듯 고요하다는 것을, 정선과 영월의 높은 돌산들의 단단함을.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함 속에 서점들이 있었다.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서점에는 특징이 있다. 서울에 있다 지방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서울의 수많은 경쟁과 다툼 속에서 행복을 찾아 만든 것이 서점이다. 비록 돈을 크게 벌지 못하더라도 경쟁을 벗어나 자신의 색을 찾았다. 이들을 지역에 남게 한 것은 자본도, 집도, 일자리도 아니었다.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다.

졸음 쉼터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별들이 보였다. 도시를 벗어나 어떤 빛도 없는 곳에 들어서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도시의 네온사인이나 LED 등은 경쟁을 하듯 부풀어 올라 별빛을 가린다. 서울을 벗어나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수억광년이 떨어진 곳에서 자신이 여기 있음을 이야기하는 별처럼. 땅에서도 수많은 거리에서 존재를 알리는 빛이 반짝인다.

충남 금산군에서 만난 '책방카페에서'의 책방지기님은 우리가 떠나기 전에 음료들을 챙겨주셨다. 금산의 명물인 인삼즙, 책방카페에서의 단골들이 사랑하는 자몽에이드. 금산 인삼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야학을 운영하는 그 책방지기님의 인사를 나는 기억한다.

경북 청도에서는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서점의 고충과 아픔을 수시간 털어 놓은 '오마이북' 사장님. 고향을 지키고 싶어 아이들에게 영어 교육을 직접 시키고 그 어느 지역 서점보다 동화책을 많이 들여놨었던 '내사랑사book'의 사장님. 이들은 모두 별처럼 빛났다.

인구소멸과 지역서점이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란 조금은 발칙한 상상을 해본 후 서점 사장들을 인터뷰를 하며 확신한 것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꿈이다. 강렬한 네온사인과 LED 불빛 속에서도 반짝이고 있는 별이 내 머리 위, 혹은 내 발 아래 지구 반대편 밤하늘에 여전히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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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출산 정책은 우리를 계속 경쟁의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집을 사게 해주겠다" "아이를 밤까지 봐줄 테니 야근도 걱정 마라". 하지만 그런 것들을 벗어나면 우리의 삶 중 다른 조각이 거기에 있다. 바다의 햇빛과 시낭송 사람들과의 모임과 공동체의 회복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쉼과 문화다. 쉼이 있으면 문화가 만들어지고 그럼 사람이 모여든다.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는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현 젊은 세대가 꿈꾸는 삶의 일부분임은 확실하다. 자신만의 작은 빛줄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컬처노믹스다.

차를 끌고 서울로 돌아가며 다시 내가 행성의 지평선을 향해 달리고 있음을 상상한다. 달리는 것 자체가 삶이 돼선 안 된다. 저 길 끝에는 다시 내 삶이 있어야 한다. 수억광년에서 쏟아진 작은 온기들을 살필 수 있었던 취재들처럼 나 역시 그들처럼 누군가에게는 작은 별빛이기를….

인구든 지방이든 소멸의 답은 사실 가까이에 있다. 자신의 빛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모두의 꿈일 것이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 더스쿠프

뉴스페이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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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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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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