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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변한 숲, 단풍이 아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소나무류(소나무, 해송, 잣나무 등)가 단기간에 말라죽는 병입니다.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감염되면 잎이 점차 아래로 쳐지면서 붉게 변합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잎이 다 떨어져 나간 다음 하얗게 변한 나뭇가지만 남습니다. 수분이 다 빠져나간 만큼 조그만 외력에도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 전체가 옆으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소나무재선충병 치료제가 따로 없다는 점입니다. 멀쩡한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감염되면 예외 없이 서서히 죽습니다. 숲 전체가 재선충병에 걸리면 사실상 그 숲은 민둥산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능선을 따라 붉은색 나무가 눈에 띌 때가 있을 겁니다. 특히 요즘 같은 가을철에는 붉게 변한 소나무를 보면 '단풍이구나'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붉게 변한 소나무는 높은 확률로 재선충병에 감염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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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병과 하늘소
소나무재선충병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 침입병입니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된 다음 지금까지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재성충병의 확산은 하늘소와 긴밀히 연관돼 있습니다. 재선충은 1mm 남짓 크기로 매우 작습니다. 소나무에서 다른 소나무로 이동하려면 자력으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이때 국내에서 서식하는 하늘소(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를 매개체 삼아 이동합니다. 하늘소가 주변 소나무 껍질에 옮겨 붙었을 때 하늘소 몸 안에 기생하던 재선충이 소나무에 침투합니다. 그래서 재선충병 방제 작업은 곧 하늘소 개체수를 관리하는 것과 직결됩니다. 산림청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전략을 짤 때 하늘소 생태 특성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늘소는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주로 소나무 몸통 안에 있다가 4~8월 사이 성충이 돼 밖으로 나와 활동합니다. 그래서 하늘소가 성충이 돼 밖으로 나오기 전에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를 베어내는 게 효율적입니다. 그래야만 다른 멀쩡한 소나무로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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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병 창궐, 최근 3배 급증
재선충병은 최근 2~3년 사이 산림 당국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실(국회 농해수위 간사) 윤다솜 보좌관의 도움으로 최근 5년간 지역별 소나무재선충병 발생 및 방제 현황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눈에 띄는 시점은 2022년에서 2023년으로 넘어가는 해입니다. 2020년부터 살펴보면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류는 연간 30~40만 그루였습니다. 그러다 2023년에 접어들 때 그 수가 3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2023년 재선충병 감연 소나무류는 약 106만 그루입니다. 2024년에는 주춤하긴 했지만 89.9만 그루가 재선충병에 감염됐다고 산림청에 보고됐습니다. 재선충병 감염 소나무류가 급증하다 보니 방제가 이뤄지지 않은 소나무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2년까지는 재선충 감염 소나무에 대한 방제가 완료됐는데, 2023년부터 방제를 하지 못한 소나무가 현장에 방치돼 있습니다. 그 수는 현재 전국적으로 약 47만 그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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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병 온도차, 영남 지역 극심
재선충 감염 소나무 수는 지역마다 편차가 심합니다. 영남 지역 같은 경우는 피해가 극심합니다. 산림청에 보고된 2023년~2024년 재선충병 감염 소나무류 약 196만 그루 가운데 약 70%에 해당하는 약 136만 그루가 영남(경북: 87.5만 그루, 경남: 48.8만 그루)에 있습니다. 지자체별로 보면 경북 경주시, 경북 포항시, 경북 안동시, 경남 밀양시가 상황이 심각합니다. 해당 지역에서는 재선충 소나무가 마을 곳곳에서 목격되는 만큼 주민들도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강원, 경기 북부지역에서도 재선충병의 확산 속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역 내 재선충병 확산은 이들에게 숲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인천광역시, 세종시 경우는 재선충병 감염 소나무가 같은 기간 동안 한 그루도 없었습니다. 이밖에 산림 면적 비율이 낮은 도심에서는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재선충병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낮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겐 타 지역에서 우연히 본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붉은 빛으로 물든 단풍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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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병 방제는? "베어내야"
재선충병 확산 저지는 곧 재선충 감염 소나무 방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베어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벌채 이후 처리 방식은 훈증, 파쇄, 소각 등이 있습니다. 훈증은 약제를 살포한 다음 밀봉해 재선충을 박멸하는 방식입니다. 파쇄와 소각은 말 그대로 베어낸 나무를 잘게 분쇄시키거나 태우는 방식입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 방제는 물리적 제약이 많습니다. 특히 산 중턱 같은 데는 경사도가 매우 심합니다.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나무를 베어내려면 중장비 등을 동원해 접근해야 하는데, 안전사고가 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려운 작업인 만큼 비용도 많이 듭니다. 보통 재선충 감연 소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는 데 약 15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현장 작업자들은 말합니다. 더군다나 작업 환경이 좋지 않아 체력 소모가 심하고, 안전사고 걱정도 있어 꺼리는 작업입니다. 이 때문에 재선충 감염 소나무 벌채 작업은 외국인 노동 인력이 이미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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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은 이밖에 재선충이 걸리지 않은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예방 목적의 '나무 주사'를 놓기도 합니다. 직접 소나무에 약제를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이 외에도 헬기나 드론을 이용해 약제를 살포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 방제 방법에 대해서는 작물 재배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하는 임업 종사자들의 반발이 존재합니다.
재선충병 급증, 기후 문제인가?
재선충이 2022년 기점으로 급증한 것에 대해서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게 기후 변화입니다. 한반도 기온이 상승하면서 재선충을 퍼뜨리는 하늘소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늘소 개체 수가 느는 만큼 재선충병 전파가 더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확산 속도를 억제하고, 관련 연구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귀결됩니다.
산림청 방제 전략 실패를 급증의 원인으로 보는 일부 의견도 있습니다. 재선충병을 포함한 산림 병충해는 산림청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합니다. 산림청이 재선충병 방제지침을 수립하고 매뉴얼에 따라 움직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기후 변화 문제와 별개로 산림청의 정교하지 못한 방제 전략이 재선충 확산을 막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재선충병은 일본 등 해외에서 이미 확산하고 방제를 한 전례가 있었던 만큼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예산을 무턱대고 늘릴 게 아니라 방제 전략을 재수립하고, 어느 부분에 예산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투입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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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 감염 소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두어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습니다.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려도 자연적으로 소멸되게 두자는 것입니다. 모두 베어내고 나면 산림 복원 문제도 생각해야 하니 일단 두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로 쉽게 넘어질 수 있는 만큼 사람 안전문제와 직결된 경우에는 빨리 베어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박찬범 기자 cbcb@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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