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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동아광장/전재성]세계 핵질서 흔드는 북핵… 한국이 해야 할 ‘3중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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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늄 시설 공개한 北에 군사억제 강화

완전 비핵화 위한 협상도 포기해선 안 돼

핵질서 위협한다는 것 국제사회에 알려야

동아일보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발사와 고농축우라늄 제조시설 공개를 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북한은 동아시아의 조그만 불법 국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사일을 공급해 유럽 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핵미사일을 중심으로 방위산업을 육성하는 세계적인 무기수출국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 러시아와 함께 미국 주도 안보질서를 비판하고 다극 체제를 수립한다는 세계 질서 담론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 북핵 문제의 국제적 맥락이 변화하면서 한국도 북핵 문제에 관한 어떠한 전략적 내러티브를 제시하는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현재의 세계 질서는 다권역 경합 질서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권역이 약화되고 수정주의 국가들은 새로운 국제권역을 수립하고자 한다. 이 가운데 기존의 지구적 핵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종식시킨 단 한 번의 핵무기 사용 이후 인류는 또 다른 핵전쟁을 막기 위한 규범과 규칙을 만들어 왔다. 관념적인 핵무기 터부가 형성되었고, 핵확산금지조약(1970년)이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1996년) 등으로 핵무기의 확산과 발전을 막아 왔다. 더 이상 핵무기 국가가 출현하지 못하게 하고, 핵실험을 통한 핵무기 발전을 막고, 무엇보다 핵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노력이 핵심이다. 이제 모든 금기는 흔들리고 있다. 전쟁의 시간이 도래하고 확전 위험 속에 핵전쟁의 가능성은 목전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를 공격했다. 전쟁의 전환점을 만들고 다가올 협상에서 고지를 점하려는 목적이다. 우크라이나가 서방 지원 장거리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경우 러시아는 나토와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세계 핵전쟁이 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전쟁 중에 헤즈볼라의 레바논 거점을 공격했다. 이란과 제한전을 지속하면서 전면전의 위험도 상존한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상대방의 핵시설 공격 가능성을 수차례 거론했고 향후 전면전이 발생하면 이스라엘의 핵무기 사용, 이란의 본격 핵개발의 위험은 높아질 것이다.

핵 강대국 간 추이는 더 우려스럽다.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이 한창 때인 1972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체결하여 핵군비통제를 시작했다. 2010년 뉴스타트 조약(New START)으로 실전 배치 핵탄두와 장기 투발 수단의 수를 제한해 오고 있다. 작년 러시아가 뉴스타트 조약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2026년 2월 조약 갱신의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조약이 파기된다면 1972년 이후 미-러 간 핵무기 관련 군비통제조약이 존재하지 않는, 핵질서 역사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중국은 빠른 속도로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증강하고 있다. 미국에 비해 절대적인 핵 열세에 처해 있는 중국은 그간의 소극적 핵전략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인 핵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대만을 둘러싼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통상 전력에서 우위를 추구하는 중국은 미국의 전술핵 사용을 우려한다. 향후 중국이 미국에 대해 핵 동등성을 확보하거나 핵 우위를 점하게 되면 더욱 적극적으로 공세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미국 역시 지구적 핵우위를 유지하고, 특히 중국의 급증하는 통상전력, 핵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 증강을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탄생하면 1992년 중단된 실제 폭발을 동반한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기 물질 생산을 재개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도 북극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고 중국의 핵실험 가능성도 상존한다.

그간 북한의 핵개발은 공고한 지구 핵질서 속에서 명백한 불법이었다. 이제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느슨해졌다. 핵 사용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이란 등 비핵국가에 대한 러시아, 이스라엘 등 핵국가의 위협은 핵 터부의 심리적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북한의 무차별 핵무기 사용도 현실감을 획득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한가하고 달성 불가능한 희망으로 내려앉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의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가 빠진 것을 두고 논란이 많지만, 지금 이 시간 미국의 관료 중에 북한 비핵화를 위해 고심하는 이는 극히 소수일 것이다. 한국의 북핵 내러티브는 북한 비핵화를 철저히 고수하되 북핵 문제의 지구적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향후 정책은 3중의 노력, 즉 북핵에 대한 강력한 군사억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 그리고 지구적 핵질서 강화를 위한 노력을 포괄해야 한다. 특히, 북핵 문제가 지구적 핵질서가 무너지는 실마리가 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지구적 규범을 공고히 하는 한국의 노력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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